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쿠레키리시탄 (문단 편집) == 개요 == '[[샤이 지지층|숨은]] [[크리스천]]'이라는 뜻으로 [[일본]]의 [[에도 시대]] 무렵, 극도의 종교 탄압에 [[가톨릭]] 신자들이 음지로 숨어들어, 사제가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비밀리에 종교생활을 지속한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기독교]] 탄압은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신정부가 들어선 [[1873년]]([[메이지]] 6년)에 가서야 [[사이고 다카모리]]가 금교령을 폐지하면서 풀렸다. [[한국인]] 일본학자들은 '''잠복 키리시탄'''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한다. ~~숨독~~ 키리시탄 관련 유적이 있는 나가사키 일대에서도 잠복 키리시탄(潜伏キリシタン)[* 일본식 발음은 '센푸쿠 키리시탄']이라고 불렀다는데, 키리시탄 관련 시설이 해당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것을 계기로, 일본의 각종 미디어에서도 '잠복 키리시탄'이란 단어가 언론에 잠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1873년 이전의 박해를 받던, 역사 속의 토착 가톨릭 신앙은 [[한자]]를 써서 카쿠레키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으로 표기하며, 1873년 이후에도 [[가톨릭]]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전의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신앙은 [[카타카나]]를 써서 카쿠레키리시탄(カクレキリシタン)으로 다르게 표기한다. 물론 발음은 같다. 한때 모든 카쿠레키리시탄(의 자손)은 [[가톨릭]]으로 복귀했고, 가톨릭으로 복귀하는 것을 거부했던 카쿠레키리시탄은 [[1980년대]]까지 존재하다가 신자가 모두 죽자 사라졌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1991년 인류학자 크리스탈 웰란이 [[나가사키현]] [[고토시]]에 아직 존재함을 확인했다. 고토시가 워낙 외진 섬이라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고, 그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존재를 숨긴 채 신앙을 유지해온 만큼, 다른 오지에서도 남아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들은 가톨릭교회에 복귀할 뜻이 없고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려고 하나, 젊은층이 이탈하면서 미래는 밝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