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자크 (문단 편집) == 역사 == || [[파일:DINtAWYXYAATy_v.jpg|width=100%]] || [[파일:Zaporozhian Cossacks - Wikipedia.jpeg.jpg|width=100%]] || ||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코자키 헤트만 ||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코자키 병사 || || [[파일:external/www.absolutrusia.com/Rusia15.jpg|width=100%]] || [[파일:external/r.foto.radikal.ru/98a49d38cfa6.jpg|width=100%]] || ||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러시아 제국]]의 돈 카자크 기병(컬러 복원) ||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 소속 돈 카자크 기병 || || [[파일:external/www.roa.ru/Kos4.jpg|width=100%]] || [[파일:external/www.rkka.ru/kaz_04.jpg|width=100%]] ||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소속의 돈 카자크들. [[독일 국방군]] 마크가 붙어 있다. || [[소련군]]의 돈 카자크(= 쿠반 카자크) [[초하|예식복]][* 돈 카자크는 러시아 내전 당시 소련을 지지한 카자크 중 상당수를 차지했다.] || > 우크라이나인에게 카자크는 러시아와 차별되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원형을 만든 민족 영웅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현대 러시아인에게 카자크는 러시아의 변경을 개척한 애국주의의 상징이었다.[* Tabolina, T. V.(1994) ''Vozrozhdenie Kazachestva'': 1989-1994 Istoki, Khronika, Perspektivy, ([[Moscow]]: [[http://www.ras.ru/|Rossiiskaia akademiia nauk]], Institutetnologii i antropologii im. N.N. MIklukho-Maklaia, Tsentr po izucheniiu mezhnatsionalnykh otmoshenii), pp294] 크게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지역이 기원인 자포리자 코자키와 러시아의 [[돈강]] 하류가 기원인 돈 카자크(= 쿠반 카자크)로 구분하여 살펴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드니프로강]] 유역의 코자키와 러시아 [[돈강]] 유역의 카자크는 최초 단계에서 유사한 역사적 배경과 유사한 경로를 거쳐 유사한 형태를 가진 '경계인 집단'으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역사 과정의 길을 걷게 되었다. [* 구자정, <''"경계인"으로서의 까자끼'' : 까자끼의 역사적 기원과 형성에 대한 소고>, (러시아 연구 vol20 1권, 2010)] 폴란드의 지배를 받던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코자키(Запорозькі козаки)'''는 주변의 폴란드, 루스 차르국, 크림 칸국 및 칸국의 후견국가인 오스만 제국 등과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대립하면서 '''끊임없이 자립을 추구했다'''. 폴란드는 자포리자 코자키를 폴란드 사회에 편입시키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코자키 및 왕국 내 루스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결과적으로 자포리자 코자키의 저항은 [[대홍수(역사)|폴란드의 운명에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자포리자 코자키 집단은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이후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러시아의 대제 [[예카테리나 2세]]는 코자키 헤트만국을 해체하고 '[[소러시아]]' 관구를 설치했다. 이로써 자포리자 코자키의 역사도 함께 종언을 맞았다. 하지만 '''자포리자 코자키는 소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루스를 거쳐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의 토대가 되었다.''' 반면 '''돈 카자크(Донские казаки)'''는 일찌감치 러시아 치하에 편입되었고, 어느 정도의 자치를 허용받는 대가로 차르를 위해 복무하는 특수한 군사집단으로 변모했다. 즉 일종의 군사적 카스트 또는 '신분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돈 카자크를 편입하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폴란드 역시 코자키를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였다. 돈 카자크들은 러시아 제국의 선봉이 되어 영토 팽창에 앞장섰다. 이들은 캅카스,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는 물론 극동의 연해주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경계지역을 따라 널리 이주하였다. 결론적으로 돈 카자크들은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종언을 맞을 당시에도 계속 존속했고, [[러시아 내전]]을 거쳐 소련이 수립되는 격동기에도 카자크는 '봉건제의 잔재'로 탄압받으면서도 명맥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후 기병 병과의 해체로 카자크들은 일반 시민으로 돌아갔으며, 전통적인 사회조직과 자치권도 완전히 해체되었다. 이에 더해서 나치 독일에 부역한 백계 카자크들로 인해 소련에 충성한 카자크 역시 '잠재적 배신자'로 백안시당해야 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 카자크는 러시아 애국주의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으며 긍정적인 면모가 부각되었다. 그 결과 돈 카자크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카자크 문화의 복원과 부흥이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장려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