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시오페아(밴드) (문단 편집) === 2기(1990 ~ 2006) === 사쿠라이 테츠오와 짐보 아키라의 탈퇴 이후 1990년, 카시오페아는 베이시스트로 나루세 요시히로, 드러머로 히야마 마사아키를 맞아들인다. 나루세 요시히로는 1977년 카시오페아가 출전했던 EastWest '77의 사이타마 지역 예선 심사위원으로 만나 오래전부터 이미 구면인 관계였다. 새로운 멤버와 더불어 카시오페아는 [[파이오니아]] LDC(Pioneer LDC)로 소속사를 정한다. 새 멤버가 정해진 카시오페아는 이내 앨범 [[The Party]]를 동명의 영상물과 동시에 발매하고, 이후 1991년 [[Full Colors]]를 발매하여 좋은 평가를 얻는다. 2기 카시오페아 초반의 이 두 앨범은 인스트루멘탈 음악으로만 이루어진 구성으로 발매하여 1980년대 후반에 바뀐 음악성을 다시 수정한 것을 확실시하여 바뀐 음악성에 실망한 기존 팬들의 복귀와 더불어, 나루세 요시히로와 히야마 마사아키만의 새로운 개성을 형성해 작풍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팬들의 유입 또한 이끌어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34ckTeuee9c)]}}} || || The Party VISUAL STACK || 1992년 8월, 히야마 마사아키는 건강 문제로 요양을 위해 라이브 앨범인 [[We Want More]]를 마지막으로 탈퇴하고, 그 후임으로 당시 22세인 쿠마가이 노리아키가 가입하게 된다. 쿠마가이는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귀국하여 일본 국내 활동을 찾던 중 아마추어 시절 동경하던 카시오페아의 소속사에 프로필과 데모 테이프를 보낸 것이 영입의 계기가 되었다. 또 동년 10월, 카시오페아는 다시 친정과도 같은 알파 레코드로 소속사를 이적하였고, 이후 알파 레코드가 경영부실로 파산하여 [[도시바#과거 영위한 사업|도시바 EMI]]에 인수되어 알파 뮤직으로 법인이 바뀌자 계약 기간을 마치고 1994년 가을에 [[포니캐년]](Pony Canyon)으로 이적하게 된다. 한편 멤버와 레이블이 바뀌면서도 활동은 점차 안정되어갔다. 앨범도 다시 매년 정기적으로 발매하는가 하면, 해외 공연도 여러 국가에서 활발히 진행하게 된다. 특히 1996년 2월 17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에 일본인 아티스트로서 한국 공연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3Bx_VzROaVc)]}}} || || MBC에서 방송한 1996년 한국 공연 || 1996년 10월 쿠마가이 노리아키가 탈퇴한다. 이 시기에 라이브에서 스가누마 코조(菅沼孝三)가 잠시 서포트 드러머를 맡은 적도 있었지만, 이내 짐사쿠 활동중이던 전성기 멤버 짐보 아키라가 1997년 1월에 서포터 드러머로 복귀하기로 결정되며 다행히 짧은 기간 내에 일단락되었다. 1997년, 결성 20주년을 맞아 카시오페아는 활동 초기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던 하비 메이슨을 게스트로 [[Light and Shadows]]를 발매한다. 한편 짐사쿠가 1998년 2월 마지막 투어 중 해산을 발표하면서 짐보 아키라가 카시오페아 활동에 더욱 힘을 주는 계기가 되어 단순 서포트에서 스페셜 서포트로 참가 명의를 바꾸며 카시오페아에는 오히려 호재가 되었다. 이후 전작인 Light and Shadows의 차분한 분위기와 다르게 옛 카시오페아의 스타일을 포함한 [[Be(카시오페아)|Be]]를 발매하고, 1999년에는 데뷔 20주년작인 [[Material(카시오페아)|Material]]을 발매한다. 하지만 그 해 포니캐년이 성과 부진을 이유로 [[엔카]], [[가요]], [[포크 음악]] 계열의 가수 대부분의 전속계약을 종료시키며 젊은 층을 타겟으로 한 J-POP 전문 음반사로 변모를 꾀하고, 이에 카시오페아는 같은 지원 조건으로는 소속사 유지가 힘들 것이라 판단하고, 1999년 가을에 파이오니아 LDC로 7년만에 돌아오게 된다. 파이오니아 LDC 복귀 직후인 1999년 10월 2일, 카시오페아는 [[히비야공원|히비야 야외 음악당]]에서 기존 4인에 더해 사쿠라이 테츠오와 쿠마가이 노리아키, 그리고 1976년의 카시오페아 초대 키보디스트인 코이케 히데히코를 게스트로[* 히야마 마사아키 또한 제안을 받았으나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관객으로 참석하였다고 한다.] 20주년 기념 라이브 공연을 한다. 이 공연은 앨범과 영상물로도 제작되어 [[20th]]라는 제목으로 발매하였다. 2001년 6월 28일에는 1996년 이후 5년만에 2번째 내한 공연을 했는데, 당시 미발매 앨범이었던 [[Main Gate]]의 곡 Good Luck!을 [[https://youtu.be/esUiLTcmaEk|세계 최초로 공개하기도 하였으며]], 2003년 8월 9일에는 당시 발매한 앨범 [[Places]] 기념 투어로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https://youtu.be/9PdirNQtAFo|3번째 내한 공연을 하였다]]. 이어 그 해 11월 21일과 22일, 도쿄 후생연금회관에서 양일간 카시오페아와 함께 일본 퓨전 재즈의 양대 거장인 [[T-SQUARE]]와 [[Casiopea vs The Square Live]]라는 공연명으로 역사적인 협연을 이뤄낸다. 21일의 공연은 앨범으로 발매되었고, 22일의 공연은 영상물로 발매되었다. 한편 이 시기 파이오니아 LDC를 모회사 파이오니아가 [[덴츠]]에 매각함에 따라 제네온 엔터테인먼트(Geneon Entertainment)로 상호가 변경되어 카시오페아도 제네온 소속이 되고, 2004년 이후에는 짐보 아키라와 전 T-SQUARE 드러머인 노리타케 히로유키(則竹裕之)가 함께 결성한 트윈 드럼 유닛인 Synchronized DNA를 서포트로 하여 투어를 진행하거나 정규 앨범인 [[Signal]]을 발매하기도 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Edc2yVHRHiQ)]}}} || || 2003년 T-SQUARE와 협연한 Fightman || 하지만 카시오페아의 활동은 80-90년대에 비해 2000년대에 들어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고, 멤버들의 개인 활동들도 그만큼 많아져갔다. 그러던 중 2006년 1월, Live Signal 투어를 20일 도쿄 후생연금회관과 27일 삿포로의 페니 레인 24(Penny Lane 24)에서 마지막으로 마치고 카시오페아는 이후의 일본 국내 일정을 발표하지 않는 것에 이어, 연례행사가 된 팬클럽 파티 또한 사전에 공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중단하며 좋지 않은 징조를 보였다. 그럼에도 6월 28일과 29일에 예정되어있던 4번째 한국 라이브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예정대로 실시하여 전 라이브에서 격렬하게 호응해준 한국 팬들에게 마지막 무대를 선물하였고, 이후 8월 1일에 카시오페아는 노로 잇세이의 "카시오페아 일체의 활동을 중지하고 싶다"는 의향에 따라 모든 활동을 중지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