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샨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Tepe_Sialk_in_Kashan,_Iran.jpg|width=80%]] 시알크 테페 (언덕) 유적의 지구라트 시가지 서남쪽에 위치한 시알크 테페에서는 기원전 7000년 경의 주거지가 발굴되었으며 기원전 3000년 경에 지어진 지구라트가 남아있다. 후제스탄 ~ 파르스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엘람]] 왕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시알크 유적의 출토품은 루브르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이후로 일대에는 카샨이란 지명의 유래인 카시얀 부족이 거주하였으며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는 상업 도시로서 평범히 지냈다. 640년 경, 이슬람 제국 ([[라쉬둔 왕조]])에게 정복된 카샨은 이후 쉬아 무슬림들의 거점이었다. 9세기 초엽, [[압바스 왕조]]의 황후였던 주바이다 빈트 자파르[* [[하룬 알 라시드]]의 처음이자 가장 사랑받았던 황후. 그녀는 [[타브리즈]] 등 제국의 여러 도시들을 후원하였다.]의 후원으로 시가지를 두른 성벽이 세워졌다. 11세기 말엽 [[셀주크 제국]]의 술탄 [[말리크 샤]]는 성벽을 보수하고 해자를 둘렀다. 동시에 시내 서쪽에 잘랄리 성채가 지어졌다. 이로써 요새화된 카샨은 1198년 [[호라즘 제국]]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4개월간의 공성전 끝에 버텨내었다. 그들은 도시 외곽을 약탈하는데 그쳤다. 한편, 카샨에는 12세기부터 셀주크 제국의 후원을 통해 채유타일 포함한 도자기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3세기 ~ 14세기 팍스 몽골리카를 거치며 실크로드가 중흥기를 맞은 것과 함께 도자기 산업은 더욱 발전하였다. [[사파비 제국]] 시대인 16세기 말엽, 카샨은 12년간 중부 이란을 혼란에 빠뜨린 무함마드 칸[* 아바스 1세와 내전을 벌였으나 결국 그에 진압됨]의 근거지 인근에 위치하여 반군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으나 견고한 성벽 (두께 4m, 높이 6m) 덕에 함락되지 않았다. 1598년, [[아바스 1세]]는 이스파한으로 천도하였고, 그 북쪽에 위치한 황실 휴양지로 선정하여 별궁과 정원을 지었다. 당시 지어진 건축물 중에서 핀 정원이 유명한데, 19세기 이란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재상 아미르 카비르가 암살된 곳이기도 하여 이란 근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후 번영하던 카샨은 사파비 왕조 말엽 의아프간 족 (호타키 왕조)의 침공 시에 약탈당하고 성벽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나디르 샤의 아프샤르 왕조 때에 복구되었다. 1778년에는 8천의 인명 피해를 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카자르 왕조]]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복구되어 현재에 이른다. [[분류:이란의 도시]][[분류:이스파한 주]][[분류:오아시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