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칠레인 (문단 편집) == 지역별 차이 == 남부의 경우 [[독일계 칠레인|독일계]]나 [[크로아티아계 칠레인]] 인구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 인구비중 자체로 아니면 얼마 되지 않지만, 칠레 정부가 근대 프로이센을 산업화의 롤 모델로 삼으면서[* 이 점에서는 옆동네의 이웃국가인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 칠레로 이주한 독일인들은 칠레의 공교육개선과 군사개혁 등에 많은 기여를 남길 수 있었다. 주한 칠레 대사를 [[2003년]]에 역임한 페드로 슈미트 (Pedro Schummit) 대사 역시 슈미트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계 혈통이다. [[프로이센]] 출신 외에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독일계 및 남슬라브계 이민도 많았는데 특히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들의 이민이 많았다.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크로아티아계 인구가 많은 나라가 바로 칠레라고 한다.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크로아티아인 상당수가 칠레 남부의 푼타 아레나스 지역에서 금광을 개발하는 와중에 칠레 남부해안가의 기후가 [[달마티아]]와 유사하단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눌러앉았다고 한다. [[프랑스계 칠레인]]들도 많은 편이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 역시 프랑스계 출신이다. 그리고 여타 미주 국가들처럼 이탈리아계 이민자들도 존재한다. 북부 및 중부는 날씨가 [[지중해성 기후]]로 따뜻한 편이라 먼저 개발된 이유로 스페인계가 다수인데, [[바스크]] 및 [[갈리시아]] 출신들이 대거 건너왔다. 칠레인들이 이웃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달리 시끌벅적하지 않고 조용하고 차분한 편인 건 사실 정서가 우울하기 짝이 없는 (....) 바스크 및 갈리시아 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북부 항구도시에 [[아일랜드인]] 이민자들도 적지 않게 유입되었는데, 이들은 농업에 종사하는 대신 주로 칠레 항구도시에서 비료를 수출, 선적하는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드물지만 [[금발벽안]]도 있다. 칠레의 유명 모델이었던 [[호세피나 몬타네]]가 대표적이다. [[독일]], [[크로아티아]] 등 유럽 각 국들에서 칠레에 이민이 쏟아져 오던 식민지 시기에는 특히 기후가 추운 남부지역으로 오는 [[독일인]]이나 [[크로아티아]]인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카 원주민]]인 마푸체 족들을 언급하며 이들을 "백화"시켜 달라 (....)는 부탁까지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마푸체 족들의 땅이 모두 칠레 정부군에 의해서 정복되자마자 칠레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짓이 [[독일인]]이나 남슬라브인 등 이 지역 정착민들과 마푸체 여인들을 강제로 결혼시켜서 혼혈아를 낳게 한 일이었고 이후 백인의 피가 강하게 혼혈된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원주민의 정체성이 희석되기 시작했다. 셀크남의 경우는 대대적 몰살과 강제혼혈화로 칠레 정부에서 순혈 셀크남은 멸종했다고도 하는데, 오늘날 남미대륙 원주민 상당수의 메스티소가 것을 감안하면 혼혈로 셀크남 족이 멸종했다는 말은 잘못된 주장이라는 해석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