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친중/대한민국 (문단 편집) == 친청·친만주족 == [[청나라]] 및 청나라의 지배민족이었던 [[만주족]]에 대해 호감이 있는 경우다. 조선 후기에는 진지한 의미에서의 친청·친만주족 성향인 사람들은 [[효종(조선)|효종]]의 친청파 숙청을 기점으로 완전히 몰락했으며, 그나마 청나라에 대한 반감이 덜했던 [[중상학파]]조차 청나라의 선진성을 본받자고 했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숭덕제]] 정권의 조선에 대한 만행을 정당화하지는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만력제]]가 조선과 관련해서 긍정적인 야사가 많이 남아있는 반면 숭덕제는 조선과 관련해서 긍정적인 야사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고[* 병자호란이 일어난 게 숭덕제 본인보다 [[타타라 잉굴다이|용골대]] 등 그 신하들 탓이라는 식의 내용인 야사들조차 숭덕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했다가 청나라에 꼬투리 잡힐까봐 어쩔 수 없이 그런 내용으로 한 것에 가까우며, 최소한 [[삼전도비]]와 같은 수준의 엄청난 숭덕제 미화는 없다.], 숭덕제의 손자인 [[강희제]]가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에게 실로 영걸한 황제였다며 극찬을 받은 반면 숭덕제 본인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 중 그 누구에게도 그런 식의 극찬을 받은 적이 없는 점을 봐도 조선 후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숭덕제에 대한 인식이 좋았다고 보기 힘들다. 훗날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가 조선을 [[일본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주기는커녕 오히려 조선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만 하고 졸전을 거듭한 끝에 결국 일본 제국에 패배한 점 또한 조선인들의 청나라에 대한 반감을 더더욱 키운 셈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그것도 일제강점기 말을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 제국은 한창 팽창주의를 추구했으며, 그에 따라 조선 지배로 만족하지 못하고 만주까지 침공하여 [[만주국]]을 세우기까지 했다. 이후 [[중일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한 일본 제국은 자신들의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들과 비슷한 만행을 저지른 다른 외세를 좋게 평가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다른 외세가 바로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였다. 그에 따라 일본 제국은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를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조선인들에게는 임진왜란 당시의 명나라 만력제 정권을 조선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은 무능한 정권으로 비하하고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 숭덕제 정권을 조선에 자비를 베푼 정권으로 미화하는 역사관을 주입했다. 이러한 식민사관의 영향은 21세기 초까지 계속 이어져서 한국에서 병자호란과 관련해서 조선을 일방적 가해자로 묘사하고 청나라를 조선에 자비를 베푼 대인배 침략자로 묘사하는 역사왜곡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만주족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지 못한 채 중국 문화에 거의 동화되어 존재감마저 희미해졌기 때문에, 만주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 또한 희석되어 병자호란과 관련해서 숭덕제를 마음껏 미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 되었다.[* 마치 [[아즈텍 제국]]과 [[준가르]]가 주변국의 입장에서 극악무도한 침략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참하게 멸망한 것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과 같다. 사실 일본 제국도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을 뿐, 반일감정이 없거나 적은 다른 나라에서는 멸망 과정에서 [[도쿄 대공습]]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라는 비극이 일어난 것 때문에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현대에 청나라와 만주족에 대해 호감이 있는 한국인들이 많이 생겨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숭덕제가 주연급 인물로 나오는 중국 사극이 한국에서 아무 문제 없이 방영될 정도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한국 역사학계에서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 숭덕제 정권을 부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의견이 주류가 되었으며,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그런 부정적 재평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기점으로 한국 정부에 여러 부당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 중화인민공화국이 립서비스로나마 자신들을 청나라의 후신으로 여기는 것 또한 청나라와 중화인민공화국을 등치시켜 그 두 국가의 한민족에 대한 갑질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아지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헌데 청나라도 조선에 갑질을 안 한 건 아니나 그 갑질 수준이 심했던 것도 중원을 손에 넣기 전의 이야기다. 조청관계는 조명관계보다 좋진 않았지만 청나라도 중원을 손에 넣고부터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최후의 저항세력인 [[동녕 왕국]]과 [[남명]]까지 격파하고 나서는 (겉으로나마) 가만히 있는 조선을 계속 갈굴 까닭도 없었기에 이후로는 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적어도 청나라는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기본 예의는 지키며 조선을 대했으니 현대 중국이 청나라보다 더하다. 물론 진짜로 조청관계 개선에 기여한 청나라 황제인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놔두고 굳이 숭덕제를 조선에 자비를 베푼 인물로 미화하는 한국인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 극단적인 친중공 성향의 한국인들로 치면 그들이 (문제점이 없지는 않아도 최소한 [[시진핑]]에 비하면) 진짜로 한국에 관대한 성향이었던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놔두고 굳이 시진핑을 옹호하는 것과도 같으며, 한국의 친일극우세력으로 치면 그들이 진짜로 한일관계가 우호적이었던 [[백제]]-[[아스카 시대]]([[백제-일본 관계]] 문서 참고)와 조선 전기-[[무로마치 시대]] 전성기(무로마치 시대 초기와 무로마치 시대 말기는 [[왜구]]의 침입 탓에 한일관계가 악화되었던 시기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도 시대]] 초중기를 놔두고 굳이 일제강점기를 한일관계가 우호적이었던 시기로 미화하는 것과도 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