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친일반민족행위자 (문단 편집) ===# 군인 #=== 2019년 국가보훈처는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중 친일 이력이 있는 총 11명에게 안장정보상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록하기 시작했고, 이는 2020년 사망한 백선엽이 안장될 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2023년 7월 5일 후신인 국가보훈부 측은 위 안장자 12명의 안장자 정보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력을 떼내는 쪽으로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3/07/06/SRH33V243FAGJHJYL6LP3CHMFI/|검토한다고 밝힌 후,]] 24일 백선엽부터 먼저 친일 기록을 안장자 정보에서 지웠다. * [[강재호]] * [[계인주]] * 김기원: 일본 육사 출신으로 공병 중좌를 지냄. * [[김대식(1918)|김대식]] * [[김동하(군인)|김동하]]: [[만주국육군군관학교]] 출신. * [[김백일]]: [[흥남 철수작전]] 항목 참조. [[만주군]] 출신이라 민문연이나 시민단체의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 * [[김석범]] * ~~[[김석원]]~~: [[일본군]] 출신으로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고, 학병권유를 다닌 적이 있다. 그러나 [[성남고등학교(서울)|성남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서전에 "일제식민지시대에 오래토록 일본군인 노릇을 했다는 것은 '''나의 생애 중에서 가장 큰 불명예'''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한국독립군|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지청천]]의 가족'''을 돌봐준 걸 보면 어느 정도 양심은 있던 사람이다. * [[김영주(북한)|김영주]] * [[김응조]] * 김인욱: 김석원과 일본 육사 동기로, 1932년 강계 수비대 제1중대장으로서 항일 무장대를 소탕했고, 1937년 간삼봉에서 김일성 및 최현 부대와 싸웠다. * [[김정렬(1917)|김정렬]] * '''[[김종원]]''' : 이쪽은 친일파 이전에 인간인지부터 [[사이코패스|의심해야 될 수준]]으로 [[인육]]을 먹는 것을 즐겼으며, 해방 후에는 [[여수·순천 10.19 사건|대놓고 학살을 저질렀다]]. * 김준원: 김기원의 동생이자 김정렬 전 국무총리의 부친으로, 일본 육사 졸업 후 시베리아에 출병했다가 1924년 보병 대위로 전역함. 이후 교사 및 사업가로 여생을 보냄. * '''[[김창룡(군인)|김창룡]]''':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항일세력을 탄압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무고한 양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결국 자신의 부하들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 [[문용채]] * [[박정희]]: 일본명 타카기 마사오(高木正雄). 만주군관학교 2기 및 일본육군사관학교 57기(편입) 출신, [[만주군]] 장교(최종계급 중위)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 그의 아들 [[박지만]]이 이 기록을 자꾸 삭제하려 시도하고 있다. [[박지만]] 문서의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소송' 단락 참조.] * [[박임항]]: 만주군관학교 1기 출신. * [[박춘식]] * [[백선엽]]: 일본명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시라카와 요시노리|동명의 일본군 장성]]이 있는데, 해당인물은 [[윤봉길]] 의사 [[훙커우 공원 의거]] 당시 폭사당했다.] [[간도특설대]] 중위. [[간도특설대]] 3기로 있었다. 광복 이후에는 [[6.25 전쟁]] 당시 지휘관으로서 활약하였다.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과 6.25 전쟁에서의 공로, 이 상반된 이력 덕분에 백선엽에 대한 평가는 극명히 갈리고 있다. 일단 일제강점기 친일 경력 자체만 보면 논란의 여지가 없다. 2023년 7월 24일부로 국가보훈부에 의해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정보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가 삭제되었다. * [[송석하]] * [[신응균]] * [[신태영]] * [[신현준(군인)|신현준]] * [[양국진]] * [[어담]] * 유승렬: 유재흥의 부친으로, 일본군 대좌로서 나남 제19사단, 관동군 등을 거쳐 태평양 전쟁 말기 뉴기니 전선에서 병으로 입원하다 1945년 패전 후 귀국했고, 1950년 6.25 전쟁 당시 부산 및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등을 지냄. * [[유재흥]] * 윤상필: 일본 육사 출신으로 만주 침공에 참여했고, 현역 군인으로서 만주국 협화회 이사를 지냈다. 기병소좌 예편 후 협화회 중앙본부위원회 위원, 총무청 참사관 등을 지냄. * [[이기건]] * ~~[[이종찬]]~~: [[일제강점기]] 중에는 분명히 친일파가 맞았으나, 해방 후에 크게 회개하고 독립 [[대한민국]]을 수호하고자 [[6.25 전쟁]]에서 열심히 싸웠고,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군의 정치개입을 막으려 했다. 심지어 친일파 시절에도 대인배스런 인품의 소유자이자, 부하를 사랑하고 민간인을 존중하는 덕장으로 칭송이 자자했기 때문에, 이 점에서 친일파로서의 이종찬은 위의 [[김석원]]이나 [[이규완(1862)|이규완]]과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이 사람은 더불어 [[일제 강점기]] 때도 군인으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인 참군인이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빼도박도 못할 [[친일파]]라는 점이 흑역사이긴 하나, 그래도 대부분이 전쟁범죄나,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타군과의 쓸데없는 대립]]을 일삼는 막장 [[당나라 군대]]이던 [[일본군]] 내에서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지킨 사람이었다. 이 점도 위의 [[김석원]]과 동일한 경우다.] * [[이희두]]: 구한국 장교를 일본군 장교로 전환한다는 칙령에 따라 일본 육군 소장에 임명되어 일제 조선군사령부로 배속, 정5위로 서위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기계체조단체를 조직하여 기계체조 보급. * [[전봉덕]] * [[정일권]] * [[채병덕]] * [[최명하]] * 최정근: 1943년 일본군 항공병 소위 임관 후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투 때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참전하여 미 함선으로 돌격, 자폭함. * [[최창륜]] * [[최창식(군인)|최창식]] : 명백한 친일파임에도 6.25 전쟁때 억울함으로 인해 친일파 중에서는 드물게 후손들에게 까이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해당 인물의 사망에 관해서는 독립운동가 출신이 잘못했다. ~~친일파 죽이기도 상황 봐가면서 했어야 했다.~~] * '''[[홍사익]]''' - [[일본 육군]] '''[[중장]]'''. 그가 골수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그가 한 발언에서 알 수 있는데,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1945년 8월 10일 그의 부관이 조국 조선의 독립을 축하한다고 했으나, 그는 "이 [[군복/일본군|제복]]을 입고 있는 한 나는 이 제복에 충성하고 싶다"고 답했다. 결국 그는 1946년 [[필리핀]]에서 포로 학대 혐의로 '''[[전범재판]]을 받고 [[교수형|처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