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친노 (문단 편집) ==== 금강팀 ==== 1993년 노무현의 당시 정치적 파트너들이 조직한 싱크탱크인 지방자치실무연구소 모임의 후신으로, 해당 사무실이 있던 여의도의 금강빌딩 이름을 따서 일명 금강팀이라고 불린다. 현재는 문재인의 존재로 인해 부산팀이 더 부각되고 있지만 금강팀이야말로 친노의 본체라 할 수 있다. 부산팀은 2002 대선을 앞두고 급조된 모임이며 그 안에서도 문재인을 제외하면 노무현의 인맥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측근이라 할 만한 경우가 없다. 반면 금강팀은 90년대 초부터, [[안희정]]의 경우는 그 이전부터 노무현의 최측근이었다. 노무현은 사실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언더독, 비주류 정치이었고 그랬던 노무현과 10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정치적 명운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었다. 문재인의 경우 변호사 사무소 후배로서 절친한 사이긴 했지만, 적어도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문재인은 정치판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금강팀의 핵심인 안희정은 대통령 취임 직후 노무현을 대신해 감옥에 수감되는 바람에 정작 안희정 본인은 참여정부 내내 요직을 맡을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노무현 정권 시간 동안 노무현의 심복 역할을 문재인이 맡게 된 것. 때문에 금강파와 부산파의 각각 후신인 [[안희정계]]와 [[친문]]계는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83학번 4인방이라 불리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안희정이 타 친노계 중진에 비해 연령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노무현이 [[김영삼]]에게 영입되었던 시절에 같이 영입되었다. [[3당 합당]]을 반대하고 김영삼에게 반발하면서 노무현과 함께 통일민주당을 탈퇴한 직후부터 노무현과 함께 행적을 쭉 같이했기 때문에, 정치적 군번으로서는 안희정이 나름대로 친노 직계에서 최고참급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이광재]] 국회사무총장[* 안희정과 이광재는 '{{{#red,#ff0000 좌희정}}}-{{{#blue,#0000ff 우광재}}}' 라는 타이틀로 노무현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 [[정윤재(정치인)|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 [[황이수]]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있고, 현재 [[친문재인]]계에 핵심 인물 격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대표적인 [[친문]] 핵심인사로 분류되다보니, 19대 대선 경선 당시 일부 언론은 김경수를 부산파로 분류했었지만, 사실 김경수가 노무현과 인연을 맺게 해준 인물은 [[이광재]]였다. [[16대 대선|2002년 대선]] 당시 이광재에 권유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 부국장으로 올라 노무현과 인연을 맺었었다. 또한 참여정부 시절때까지만해도 문재인과 김경수의 사이가 딱히 가깝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2011년 문재인이 혁신과 통합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시작했을때부터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이후 18대 대선때 문재인이 후보 수행팀장을 김경수에게 맡길정도로 가까워졌다.],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도 금강파 출신이다. 그외 [[서갑원]] 전 의원,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이강철(정치인)|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김병준(정치인)|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도 금강파로 분류된다. 정치적 실무를 이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떠안은 만큼 그에 따른 노무현의 정치적 오물을 뒤집어쓴 역할도 상대적으로 금강팀 쪽이 더 많이 했고 그런 이유로 정작 참여정부 시절 안희정 등 금강팀 인사들은 구속되거나 공직을 맡지 못하는 등의 부침이 있었고, 그럼에도 노무현 사후에도 정치권에 신용을 얻어 친노 딱지를 달고 오래 살아남았다. 그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립서비스일수도 있을 지언정, "왜 내 옆에는 좌희정-우광재 같은 가신이 없냐?"라고 주변에 말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등 돌린 친인척/측근들|그게 복선이었나]]--. 금강팀은 참여정부 이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안희정]], [[이광재]]가 도지사로 당선되면서 당내 입지를 키웠으나, 파의 대표주자였던 이광재, 서갑원이 각각 도지사, 의원직을 상실해, 기둥이 안희정 1명만 남으면서 [[친안희정]]계파로 이어진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충청 대망론]]의 유력주자로 손꼽혔던 만큼 충청권 전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세종특별자치시]]가 건설되게 된 계기가 [[노무현]]의 대선 공약이었고, [[참여정부]]가 주도해서 만든 도시이니만큼 충청권은 친노의 두 번째 근거지로 손꼽힐 수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충청권 호각지세를 이끌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이끌어 낸 주역 중 한 명 이었다. 그러나 2018년에 안희정이 [[안희정 성폭력 사건|성폭력 사건]]으로 몰락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아 안희정계가 와해되면서 정계를 은퇴하거나, 일부 인물은 [[친문]]으로 흡수되었다. [[조경태]], [[김병준(정치인)|김병준]]은 친문과의 갈등 끝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갔다. 2020년 총선에서 이광재가 원주 갑에서 당선되어 정계 복귀에 성공하면서 이쪽으로 뭉칠 가능성이 있었으나 2022년 지선에서 강원도지사 재출마, 낙선으로 구심점은 다시 와해된 상태다. 지선 직후 [[국회사무총장]]에 임명되어 재기했으나 직책 특성상 당적을 가질 수 없어 현재는 민주당을 탈당한 상황이라 예전처럼 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