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신 (문단 편집) == [[서양사]]의 충신 == [[서양]]은 평생을 주군과 나라에게 충성하는 [[동양]]과 달리 주군이나 나라가 힘을 잃으면 배신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보통은 아니고 여기도 배신이 터부시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불효와 불충을 동일선상에 놓아 역적=쓰레기나 다름없는(즉, 쿠데타에 실패하면 역사에 남는 쓰레기가 되는) 동양보다는 저항심리가 덜했다. 또한 이건 절대왕정의 얘기고, 봉건국가의 경우 왕과 영주들이 군주와 신하라기보단 계약관계에 가까웠기 때문에 얘기가 좀 다르다.], 이 쪽에도 [[기사도]]가 있었기 때문에 나라와 주군에게 평생 충성을 다한 사람들이 있다. * 이타이 - [[성경]] 개역개정판에서는 잇대, 공동번역에서는 이때라고 불린다. [[히브리]] 출신이 아닌 [[필리스티아]] 출신임에도 그는 [[다윗]]을 따라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나중에는 다윗의 신임을 받아 장군까지 오르게 된다. *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자 [[서로마 제국]]의 [[섭정]]을 맡아 제국을 방어하는데 헌신했다. 성년이 된 [[호노리우스]] [[로마 황제|황제]]가 그를 [[숙청]]하려 했을 때, 부하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라도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끝까지 충신으로 남기 위해 순순히 잡혀가서 처형되었다. * [[플라비우스 벨리사리우스]] - [[동로마 제국]]의 [[명장]]으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절의 대업인 [[서로마 고토 수복 전쟁]]에 앞장섰다. [[반달 왕국]]과 [[동고트 왕국]]을 격파하고 [[마그레브]], [[시칠리아]],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 수복에 공을 크게 세웠지만 나중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반목을 일으키며 실각한 뒤 사망했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유스티니아누스를 위해 싸웠다. 게다가 공적으로는 반목했으나 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았다. * [[발리앙 디블랭]] - [[예루살렘 왕국]]의 [[기사]]이자 [[영주]]. 당시 예루살렘 왕국의 [[왕]]인 [[보두앵 4세]] 밑에서 종군했는데, 보두앵 4세는 [[나병]]을 앓았기에 다른 영주들이나 기사들이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발리앙은 보두앵 4세를 진심으로 따르며 그를 보필하여 여러 군공을 세웠다. 보두앵 4세 역시 이에 감격하여 자신의 계모와 발리앙을 엮어주거나, 자신이 죽었을 때 [[조카]]인 [[보두앵 5세]]의 안위를 부탁하는 등, 이들은 지금까지 서양판 최고의 협과 사 관계로 꼽힌다. * [[잔 다르크]] - [[백년전쟁]]에서 [[프랑스 왕국]]을 구해낸 [[구국영웅]]으로, 당시 왕이었던 [[샤를 7세]]가 매우 적은 병력을 보내주었는데도 불평하지 않고 수많은 전투에서 영국군을 격파하며 조국 프랑스와 샤를 7세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끝내 [[샤를 7세]]에게 [[토사구팽]]당해 [[영국군]]에게 잡혀 [[화형]]당했다. *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 [[30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신성 로마 제국]]과 [[가톨릭]]에 충성을 다했다. 물론 비록 말년에 구스타브 아돌프 2세한테 깨지고 마그데부르크에서 부하들의 학살을 막지 못한 오점이 있지만 [[덴마크]]와 북부 신교도를 꿋꿋하게 막았고, 단 한 번도 황제를 배신하지 않고 충성을 다했기에 충신이라 할만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