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신 (문단 편집) ==== [[춘추전국시대]] ==== * [[굴원]] - 초나라의 명재상으로, [[암군]] [[초회왕]]이 간신의 말을 들어 자신을 파면하고, 나라를 기울게 하자 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이 사람의 고사로 [[단오절]]이 생겼다. * [[개자추]] - [[춘추오패]] 가운데 한 사람인 [[진문공]]의 신하. 진문공이 왕위에 오르기 전 망명생활을 하며 곤궁했을 때 허벅지 살을 베어먹인 고굉지신(股肱之臣)의 고사가 유명하다. 훗날 진문공이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을 따른 신하들을 포상했으나 개자추는 조용히 은거했다. 포상하려 해도 끝내 거부하자 산에 불을 질렀으나 나오지 않고 [[분사(죽음)|타 죽었다.]] 그를 기리기 위해 덥힌 음식을 삼가는 명절이 한식(寒食)이다. * [[오자서]] - [[춘추시대]] 인물로, [[오(춘추시대)|오나라]]를 강국으로 만든 사람 중 하나다. 자신의 주군인 오왕 부차가 미녀 서시와 정단에 빠져 나랏일에 소홀하자 옆에서 충언하였고, 끝까지 적국 월나라를 경계할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분개한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살을 명령하여 끝내 오자서를 죽게 하였다. * [[신포서]] - 초나라 신하로 오자서가 누명으로 부친과 형을 주살한 초 평왕에 대한 원한을 가져 오나라에서 재상을 지내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개박살낼때[* 수도 영까지 초토화 되었으며 평왕의 묘는 파해쳐 오자서가 초 평왕의 시체를 구리채찍으로 때렸다.] 진나라 애공에게 구원해달라고 애원한다. 진 애공은 아끼던 누이를 초 평왕이 측실로 삼아 공실을 모욕한 초나라에 원한이 있어 자업자득이라며 거절했지만[* 신포서는 부끄러워 입이 백개라도 할말이 없지만 초소왕은 진 애공의 조카이며 어린 왕에게 부친의 죄를 묻는 것은 심하다고 항변했다.]신포서가 일주일동안 먹지도 않고 통곡하는 모습에 감명받아 애공이 이런 신하가 있는 나라라면 아직 망할때가 아니라며 구원군을 보낸다. * [[왕촉]] -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의 [[대신]]으로, 명장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군이 침입했을 때 연나라로 귀순하라 제의받았으나, 충신불사이군 열녀불경이부, 즉 여인이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듯이 신하가 두 군주를 섬길 수 없는 법이라는 말을 남기며 자결했다.[* 악의도 왕촉이 죽은 것을 알자 크게 낙담해서 고개를 숙였으며 다른 제나라 대부들은 평민에 불과한 왕촉의 의로운 죽음에 깨달음을 얻고 함락되지 않은 즉묵성과 거성으로 모여들었고, 결국 제나라는 멸망의 위기를 벗어나갔으니 왕촉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악의 또한 연나라 소양왕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았으며 태자에게 악의는 배신할 겁니다 하는 모함을 받자 오히려 소양왕이 태자를 때려 악의가 제나라를 먹으면 그대로 주려고 했다며 큰 신뢰를 보여주었다. 이에 감명받은 악의가 제나라를 거세게 공략한건 덤... 다만 소양왕 사후 태자가 혜왕으로 연나라 왕으로 올랐고, 즉묵성을 지키고 있었던 전단은 혜왕이 악의를 미워하고 있음을 알고는 '악의가 일부러 제나라의 남은 성을 치지 않는 것은 반역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며 이간계를 걸었다. 매가 부족했던 건지 혜왕은 이를 듣고 '옳거니! 내 진작 악의가 역적임을 알았지'하며 악의를 실각 시킨다. 이대로 멀뚱히 있다가는 혜왕의 손에 죽겠다 싶었던 악의는 처자마저 내팽개친 채 조나라로 달아났다. 이후 전단의 계략에 연나라 군대는 박살나고 혜왕은 그제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일이었다. 조나라로 달아난 악의는 그곳에서 망제군(望諸君)에 봉해져 연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던 시절 못지 않은 높은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혜왕은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면서도 나라를 버리고 달아난 잘못을 꾸짖는 내용의 친서를 악의에게 보내 다시 연나라로 돌아올 것을 청하였다. 이때 악의가 혜왕의 요청을 거절하며 보낸 답서인 <보연혜왕서>(報燕惠王書)는 상당히 유명한데, 그 중 한 대목은 이렇다.'군자는 친구와 교제를 끊더라도 그 친구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직역하면 군자는 교제를 끊더라도 나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충신은 나라를 떠나더라도 옛날 임금을 욕하지 않는다.로 선왕의 은혜는 잊지 않았으니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연나라에 위해를 끼칠 행위는 일절 하지 않겠다며 분명히 선을 그은것. 정황상 악의에게 충절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사정이 어땠건간에 조국과 처자를 버려 능력인는 명장임에도 충신으로 평가받지 못했다.]중국 고대사에서 충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 [[전단(전국시대)|전단]] -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판 [[이순신]]으로,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의 [[명장]]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군이 침입하여 멸망할 위기에 놓인 제나라군의 사령관에 올라 3년간 결사 항전하였으며, 악의를 실각시키고 그 후 연나라군을 총공격해 빼앗긴 70여개의 성을 수복하여 제나라를 수렁에서 건져냈고, 전후에도 [[제양왕]]을 잘 보필했다. * [[인상여]] - 강대국인 진나라에게서 조나라를 구원한 충신. 대부분 신하들이 기는 진나라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변설로 피 흘리는 일 없이 조나라의 보물 화씨의 옥을 지키고 진나라 조나라의 회담에서 진 소양왕의 협박에 금을 타는 창피를 당한 혜문왕을 위해서 소양왕을 역으로 협박해 소양왕이 북을 치게 하여 되갚아주는 등 목숨을 걸고 왕을 보필했다. 이후 염파가 인상여가 자기보다 높은 벼슬을 가진것에 불만을 품고 여러 차례 모독을 하지만 인상여는 자신이 속한 나라의 국익을 생각해 이를 참고 분쟁을 피한 인품까지 겸했다.[* 이후 염파가 진솔하게 사과하고 반성하여 가시나무를 짊어지고 와 사죄하자 인상여는 손수 일으키고 문경지교로서 의형제까지 맺었다.] 장평대전에서 진나라 재상 범수의 반간계로 염파는 경질되고 조사의 아들 조괄이 대장으로 임명되자 병중이었던 인상여는 경험없는 조괄에게 대장을 맡기지 말 것을 요청했다. 결론적으로 낮은 신분임에도 국가의 위기에 목숨을 걸고 대담하게 적을 기만하여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공로로 출세하고 사사로운 다툼으로 국론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을 피했으며 죽는 순간까지 나라에 간언을 하여 국가의 위기를 피하고자 노력했던 조나라 만고의 충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