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신 (문단 편집) === 개념의 정의 === 그러나 위의 대략적인 정의와는 달리 실제로는 충신을 쉽게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충(忠)이란 개념이 유교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충은 다른 유교적 덕목(인, 의, 예, 신 등)들과 마찬가지로 고정적이거나 절대적인 성질이 아니라 상황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 때문에 "loyalty"라는 영어 단어로 1:1 직역이 되지 않는다. 아래에서 기술되었지만 정몽주가 충을 다한 대상은 고려의 어느 특정한 군주가 아니라 고려왕조의 종묘사직과 피폐해진 민중의 삶이었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군주 개인을 위한 충이었다면 이성계가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즉위시킨 폐가입진에 찬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아래 항목에서 예시로 기술된 충신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충의 대상이 어느 때는 군주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민중이나 국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충은 대체로 정치적인 분야에서 발현될 때가 많기 때문에, 현실정치의 필요에 의해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기보다는 실제로는 군주 개인에 대한 충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실제로 위에 언급된 정의에 맞지 않지만 군주 하나만을 위하여 충심을 바치고 목숨을 건 경우의 사람들도 충신이라고 불러주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경우, 당장 군주에게만 충성을 바치기 때문에 군주라면 누구나 이런 종류의 충신을 대량으로 육성하고 유지하길 원하는게 보통이니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기록하곤 한다. 예를 들어 [[정몽주]]를 제거한 [[태종(조선)|태종]]은 왕권 강화 과정에서 정몽주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면서 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정몽주는 군주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우매한 경우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여말에 펼친 활약이나 시책은 국가를 재건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태종이 충효를 강조하느라 정몽주를 끌어다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그에게 실제로도 능력이나 인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종이 충효를 강조하기 위해 정몽주를 끌어다 쓴 것은 정몽주 입장에서는 어이없을 일인데 정몽주는 고려의 특정 군주에게 충성했다기 보다는 고려라는 왕조 자체에 충성했기 때문 물론 조선에서는 폐가입잔의 논리에 따라 우왕과 창왕을 폐했고 때문에 정몽주를 공양왕에게 충성한 인물로 규정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정몽주 입장에서 보면 황당할만한 논리다. 또한 숙종대에 있었던 여러 복권사례도 그와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말 답이 없는 막장 국가나 군주한테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 or 자신이 모시는 존재란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 충성을 바쳐서 주변사람이나 후세를 답답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도 이렇게 볼 수 있겠다. 선조가 노답 암군인건 아니지만 자기보신에만 골몰한 인간이라 평이 나쁘고 이순신은 그런 선조에게 무슨 짓을 당해도 충성하니 후세인인 우리 입장으로선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것. 다만 실질적으로 이순신은 당시 역성혁명을 일으키거나 쿠데타를 일으켜 (예를 들어 광해군으로) 군주를 바꿀만큼 '''정치적''' 기반을 닦아놓진 못한 상태였다. 이순신은 어디까지나 천재적 전략가이자 지휘관이지 정치인은 아니고, 당시 권세가들과 동료 장수들이 그를 능력,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것과 유교국가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역적의 멍에를 쓸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쿠데타에 동참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조선에서 군주를 바꾼다는 건 확실한 명분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선조가 아예 명으로 도망쳤다면 모를까, 어쨌거나 나라 안에서 (명목상이나마) 투쟁을 계속하는데 갈아치우려고 했다간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백성들이 계속 외적에게 짓밟히고 있는데 성공가능성이 높지도 않은 쿠데타를 시도해 내란으로 전력 소모와 민초들의 고통을 늘리느니, 차라리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걸 택했다는게 더 타당하다. 이순신 입장에서는 설마 원균이란 작자가 그렇게까지 잘 만들어지고 강력한 조선 수군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릴 거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막장인 국가나 군주라면 충의를 지킨 충신이라도 보통 후대가 평가할 때 그와 관련해서 안좋은 평가가 어느 정도는 들어간다. 무엇보다 유교가 권장하는 충은 [[간신|우매한 왕까지도 받들라]]는 개념이 아니라 '''[[삼사(조선)|왕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대하는 것]]'''을 신하의 도리라고 가르친다. 공자와 함께 유교 하면 빠질 수가 없는 사람인 맹자를 그 예로 들기로 하면, 제 선왕으로부터 '탕왕이 걸왕을 쫓아내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했다는데 신하가 자신의 임금을 시해해도 괜찮은 것이냐'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말이 '인(仁)을 해치는 자를 흉포하다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악하다고 하는데 흉포하고 잔악한 사람은 그냥 필부에 불과한 것이니 '''필부인 걸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정치를 못 하는 왕에게는 반대를 해도 좋은 정도가 아니라 '''궁궐에서 내쫒아야 한다는 것.''' 결국 맹자의 논리에 따르면 인하지 못하고 의하지 못한 이는 왕이라 해도 죽이건 말건 상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맹자는 여러 군주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맹자의 논리에 따르면 군주는 인하고 의로운 정치를 펼쳐야 자신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언제라도 쫓겨나는걸 각오해야 하는데 세상 어느 군주가 이런 논리를 좋아하겠는가.] 오히려 우매한 군주만을 모시는데 진력하여 나라와 백성에 어려움을 준 신하를 좋게 평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역사는 그런 인물을 우충(愚忠, 미련한 충신)[* 이런 경우를 [[간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한 면이 있다. 간신은 군주나 정권 자체에 충성했다기보다는 이들에게 빌붙어서 단물을 빨아먹는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봉신연의]]에서 등장하는 [[문중]]을 다른 진짜 간신배들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이라 칭한다.[* 때문에 이런 충신들의 경우에는 진짜 나라 혹은 군주가 급한 위기에 처하면 간신과는 달리 어떻게든 나라나 군주를 지키려고 한다. 즉 충심만은 진짜라는 것이 간신과의 큰 차이점. 섬기는 군주가 어리석다는 점은 간신과 유사하지만.] 대신 일종의 홍보전략으로 무리가 있는 인물을 국가가 나서서 충신으로 추켜세워주는 경우는 존재했으나 이런 경우도 후대로 가면 비판적인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명말청초의 유학자인 [[황종희]]는 '(군주의 마음과 행동이)천하의 도리에 합당하지 않는데도 충성하는 건 [[환관]]이나 [[궁녀]] 따위의 충성이지 올바른 신하의 충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것도 시대에 따라 달라서 백이, 숙제 형제의 경우에는 누가 봐도 폐위해 마땅할 주왕을 폐하려는 주무왕을 말렸지만 후세에 의로운 일을 한 것으로 남았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진정한 충신은 나라나 백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다. 이런 인물이 [[암군]]의 밑에 있을 경우 군주의 잘못은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역성혁명 같은 것에 대하여는 절대 반대입장이라 여러모로 갈굼을 당한다. 군주는 군주대로 귀찮게 여기고, 역성혁명을 하려는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제거해야 할 걸림돌이다. 결국 군주의 노여움을 사서 숙청당하거나 역성혁명에 의해 제거당하는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보통 충신 소리를 듣는 인물은 후대의 인식이나 평판이 좋은 것이 보통이다. 충신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상당한 고난이나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왕조나 군주, 아군이나 국가에 대한 절의를 지킨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충신은 극단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나 군주를 지키려고 한 사람이고 낮게 봐도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나라를 발전시키고 군주를 도운 사람이니 당연히 전자는 그 희생정신이 부각되고 후자는 그 능력이 부각되며 공통적으로는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했으니 그런 치안을 듣는게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며, 왕조에도 충성을 바치지만, __해당 국왕에게는 충성심이 없는__ 희귀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충신으로는 보지 않으며 보통 권신이지만 나름대로 충성심이 있었다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간다. 권신은 왕조국가에서 군주인 왕에 버금가는 실력(정치력, 인망, 군사력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을 가지고 있는 신하를 일컫는다.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라고 불리는 승상 같은 자리가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 자리를 정하는 것도, 날리는 것도 왕조국가에서는 오직 왕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권한이자 능력인 것이다. 그런 왕이 능히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를 권신이라 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한]] 시대의 [[곽광]]이 대표적인 인물로 [[폐제(전한)|창읍왕]]을 황제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선제(전한)|선제]]를 옹립한 전적이 있다. 이 경우는 (표면적으로) 왕의 밑에 있으나 왕이 제어할 수 없는 신하이기에 해당되는 사례라 볼 수 있다. 조금 더 살펴보자면 권신 중에 나라나 백성에 충성심이 있는 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권신=나라와 백성에게 충성심을 가진 자'라는 정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권신 중에 저런 이도 있다,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권신 중에서도 권신이면서도 충신인 사례도 존재한다. 현대에서 재평가 바람이 일고 흑백논리도 어느 정도 탈피하면서, 과거 충신 소리를 듣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나쁜쪽으로 재평가가 시도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적으로 간신, 역적들과 대립각들을 세웠던 인물들로, 이들의 행적이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단순한 권력 투쟁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간신들도 왕 앞에서는 자기네들이 충신~~[[벌레|蟲]]臣~~이라고 주장한다(…). 심하면 주변 사람들을 시켜 자신을 충신이라고 추켜세우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충신은 타인이 인정하는 것이지 자처하는게 아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조선 말기에 이르면 자기 당만 충신이고 남들은 역적으로 낙인찍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당연하지만 충신은 매우 좋은 정당성이며 역적은 매우 좋은 숙청명분이기 때문이다.~~덤으로 오늘날 정치도 별로 다를 게 없기는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