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남과학고등학교 (문단 편집) === 기숙사 === 기숙사는 4층 규모이나, 4층은 학생들이 거주하진 않지만 온갖 시험(2학년들의 1회, 2회고사 및 창의력 검사 등)을 치르는 곳이었다. 예전에 연합고사가 있던 시절에 이미 합격이 결정된 예비 충곽학생들이지만 타 학교와의 성적비교 등을 위해 다른 학교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연합고사를 쳤는데 당시(12월초)엔 아직 3학년이 수능은 끝났어도 겨울방학 이전이라 방을 빼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때도 4층에서 시험을 쳤다.[* 연합고사 성적 우수 학생은 입학식 때 장학금을 줬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는데 검증되진 않았다.] 과거 충남과학고등학교 영재교육원을 운영할 때, 한 달에 한 번 교육받으러 학교에 방문해 토요일, 일요일에 합숙하며 교육을 받았다. 또한 영재학교가 없었던 시절엔 수학, 과학 시험을 치러 거기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충남 각 지역 중학생들을 선발해서 겨울 2주간 계절학교 같은 것을 열었는데, 이런 일들이 있을 때 학생들을 4층에서 재웠다. 여름 같은 경우 충남 중학생 도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금상 이상)을 내 8월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학생들 역시 합숙을 했었다. 주기적으로 빈 4층 자습실을 청소하여 상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조기졸업의 축소로 3학년의 인원 수가 많아져 4층도 재학생들이 이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4층의 시설을 확충하였는데, 이 때문에 '''다른 층보다 시설이 매우 좋다!!'''[* 기숙사 호실에 있는 2층 침대와 옷장의 하단에 서랍이 부착되어 있으며, 독서실 책상 선반은 2층으로 구분되어 있고, 책장들이 모두 [[크고 아름다운|크고 아름다워]] 천장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시설이 노후되었다. 일반적으로 과학고가 그렇듯이 남학생수가 여성보다 많아 남학생이 2, 3층을, 여학생이 1층을 쓰는 경우가 빈번했으나 여학생 수가 늘어나게 될 경우 서로 층을 바꾸게 되기도 한다.[* 여학생 신입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총 성비가 1:1에 가깝게 되는 과도기 때의 남학생들은 꿀을 빨게 된다. 설립 초기 60명(1기~5기) ~ 46명(6기~12기)만 뽑던 시기의 학생들의 경우는 기본 성비가 1.5:1~2:1까지 갔기 때문에 2층을 2학년 남학생, 3층을 3학년+1학년 남학생이 썼는데, 학년이 다르면 같은 방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1층에서 여학생들이 4명이서 한 방을 쓰며 부대낄 때 태반이 카이스트로 빠져나가고 수능을 위해 남은 3학년 남학생들은 2명이서 한 방을 쓰기도 하다가 2004-5년 즈음엔 결국 여학생들이 3층으로 옮겨갔었다.][* 2015년도가 되면서 22기 신입생의 여학생 수가 많아져 여학생이 3층, 남학생이 1층, 2층을 사용하였으나 조기졸업 축소가 맞물려 남학생 수가 급증해 2016년 여학생이 다시 1, 2층으로 내려오고 남학생이 3,4층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물론 이 기간동안 여러 문제들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남학생 기숙사에 있는 화장실에 소변기가 없었다.] 결국 2017년에 리모델링을 했다. 2021년 기준 여학생이 1층과 2층 절반을, 남학생이 2층 절반과 3, 4층을 쓴다. 과거에는 같은 학년 4명끼리 방을 썼다면 2020년부터는 코로나19의 여파로 1, 2, 3학년 3명이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상황에 따라 1학년 한 명과 2학년 두 명이 같은 방을 쓰기도 한다. 각 층에는 화장실과 세면실이 두개씩 있고, 샤워실 하나에 세탁실 하나가 있다. 편의성을 위해 학년별로 화장실과 세면실을 나누어 쓰기도 한다. 세탁실과 세면실이 연결되어 있으며, 세탁실에는 세탁기가 3개로, 문에서 가까운 순으로 1, 2, 3학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층마다 휴게실도 하나씩 있다. 무려 냉장고가 비치되어 있기에 이곳에 먹을 것을 저장하곤 한다.[* 먹을 것이 자주 털려 아이스박스를 구해서 보관하는 학생도 있다.] 방에 책상이 있어 방 안에서 자습을 하는 몇몇 다른 기숙사와는 달리, 호실 옆에 자습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야간자습이 이루어진다.[* 시험기간 외에는 자습실이 잘 쓰이지 않는다.] 일부는 사감교사의 허락을 받고 토의학습실에서 모여 공부하기도 한다. 토의 학습실에는 층마다 완강기도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스펙을 위해 나가는 대회가 많은 과학고 특성 상 보고서 등을 작성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숙사에서도 워드 작업을 위해 여기서 허락 하에 노트북을 사용하기도 한다. 2019년 기준 필요하다면 1층 사감실 앞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으나, 당일 담당 사감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가불가가 갈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호실은 정말 잠만 자는 곳이다. 과거엔 기숙사에서 벌점 20점[* 누적된 벌점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초기화된다.]을 받을 경우 10일간 퇴사해야 했는데[* 잠만 기숙사에서 못 자게 하고 점호는 빠짐없이 나와야 했다. 즉 밤 자습이 끝나면 바로 기숙사를 나가서 다른 곳에서 잔 후, 다음날 새벽에 기숙사 앞에서 점호할 때 참석해야 했다. 주변 민가에 하루 5천원씩 돈을 주면 잠을 재워 줬었다고 한다.] 이 퇴사규정이 원래는 벌점 15점을 넘어설 경우 사감들이 웬만하면 봐 주는 유명무실에 가까운 조항이었으나, 한 교사가 사감부장이 된 뒤 칼같이 적용하여[* 아침 점호가 6시 10분까진데 1분 늦었다고 벌점, 방 불을 켜 놓고 자습실에 들어갔다고 벌점, 방 문 앞에 머리카락 몇 개 떨어져 있다고 벌점을 주는 식이 되어 버렸다.][* 보통의 경우 그 날의 사감의 취향을 타 왔으나 이 사람이 사감부장일 땐 등교 후 청소 구역, 방 청소 검사는 학생들이 모두 등교한 0교시에 맡아서 하고 1교시 시작전에 교실을 돌면서 벌점 추가자를 발표했었다.] 무벌점 학생은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보는 수준이 되었고, 전교생 중 10명 가까이 퇴사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특히 샤워실, 화장실처럼 아무리 아침에 청소를 하더라도 이후 이용자의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덤터기를 쓸 수 있는 담당의 경우, 0교시~1교시 시작 전까지 사감부장이 벌점을 통지하러 교실에 들어오지 않기만을 빌었다는 일화가 있었으며 그 외에도 이성 교제의 경우 대놓고 금지했었기 때문에 저녁 휴식 시간에 본관이나 체육관 뒤 등에서 손 붙잡고 있는 걸 현장에서 걸렸다간 벌점은 뭉터기로 받아야 했었다.[* 실제로 당시 퇴사러시가 일어났을 때 남학생들의 경우 방, 청소 구역 청소 미비, 쉬는 시간 넘겨서 샤워하다 자습시간 지각& 등교 시 지각했다가 걸리는 경우 등으로 작은 벌점의 누적이나 새벽에 몰컴하다가 걸렸다거나 하는 다양한 사유가 나왔다면(물론 그 중 한 둘은 역시 이성 교제하다 걸린 케이스), 극소수의 여학생 퇴사자들의 경우 이성교제 적발을 거의 깔고 갔었다. 여담으로 교내 토론대회 의제 설정이나, 전교 회장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이성 교제 허용 여부는 단골 등장 소재였으나 당연히 현실은 씨알도 안 먹혔다.] 다만 현재는 사감의 부단한 노력으로 학생들이 퇴사당하지 않고 있다. 상점이 풍족해지고 벌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상점이 풍족한 것은 퇴사 예정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 심지어는 곱등이를 잡아도 상점이 된다. 그러다 보니 퇴사라는 말은 어느덧 농담에 가까운 말이 되었다. 또한 벌점이 줄어든 것은, 이성 교제와 같은 대형 벌점 항목이 대부분 문서 상으로만 남아있고 실제로는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며 사형 제도와 비슷한 느낌이다. '''2016년 11월을 기점으로 용역 사감을 고용한다고 결정났다.'''[* 조기졸업의 축소로 인한 학생수 증가에 비해 교사들만으로는 부족한 인력이 그 원인이었다.] 물론 사감으로 누가 오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로 인해 학생들의 기숙사 생활에 큰 변동이 예상된다. 2019년 기준 상점이 없다. 벌점이 많이 쌓이면 퇴사당한다. 물론 퇴사를 쉽게 당하진 않으나 한 번 당하면 다닐 교통편도 마땅치 않아 매일 왕복 세 시간의 등교를 해야 한다. 2021년 기준 벌점을 주는 일이 줄어 퇴사는 고의성을 갖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최초의 퇴사자는 2001년, 8기(당시 1학년)에서 나왔다. 위에서 벌점을 잘 매겼다는 사감부장도 그렇고 이 해에 교장과 교감도 새로 부임하고 유독 학교측의 통제가 심했는데, 과거 동아리 가입제한이 없어서 한 학생이 동아리 4~5개를 들어있는 경우는 매우 흔했으나 동아리 활동이 저녁 자습시간에 이루어지는 관계로,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만 하고 자습을 안 한다고 한 학생이 들 수 있는 동아리 수를 학술, 종교 동아리를 제외하면 1~2개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건 동아리 장이 되어 후배들을 받아야되는 선배들 입장에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가뜩이나 동아리 회원이 적을 경우 모이기도 어렵고 그대로 폐지의 길을 걸어야되니... 다행히 반발로 인해 그해엔 유야무야 넘어가긴 했다. 이성교제 금지를 걸고 있었더라도 실제로 처벌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음에도 역시 이 때 본격적으로 벌점 철퇴를 내려서 여학우들도 퇴사자들이 좀 나왔고, 고등학교 2학년의 경우 토요일 3,4교시가 단체활동[* 1, 2반 합동체육]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계룡산 등반을 해야했다.[* 6기야 고3이니 당연하더라도 7기는 여름에 카이스트 합격 후 2학기를 탱자탱자 놀게 되어 조금 느슨해진 것도 있었고, 남학생들 같은 경우 2층을 2학년 혼자 썼기 때문에 8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소수의 퇴사자들이 나왔다.새벽에 디아블로 2 배틀넷한다고 영양사실 문 땄던걸 걸린 것도 7기였다.] 퇴사자가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 때문인데, 테러가 일어났던 당일에 속세와 격리된 생활을 하던 충곽의 학생들 중 몇몇은 FM라디오를 청취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긴급 속보로 펜타곤이 테러에 불타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고 이 소식은 1학년 남학생 기숙사를 뒤흔들어 놓았다. 펜타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는 학생들은 미국 국방부가 불타고 있다는 소식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갑론을박이 오갔다. 결국 시사에 미쳐버린 학생들은 뉴스를 보기 위해 브라운관 TV가 설치되어 있는 숙직실의 문을 뜯어버렸고, 그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벌점을 왕창 받게 되어 4명의 퇴사자가 처음 기숙사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6기야 일단 닥쳐있는 게 수능이었고 7기는 당시 카이스트 진학생들의 경우 합격도 결정되어 외출 등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로웠기 때문에 나머지는 이들을 통해 소식을 전해들어 별 소요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