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춘추시대 (문단 편집) ==== 진도공의 패업 ==== 진나라는 문공 사후에도 패자의 자리를 지켜나갔지만 손자대인 영공의 폭정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경공 시기에는 많이 회복되었지만 그 또한 초장왕과의 [[필 전투]]에서 패배하였으며 경공 사후에 즉위한 여공이 폭군이었던 까닭에 다시 진나라의 사정은 나빠진다. 물론 여공 시기에 언릉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진나라의 체면을 살리긴 했지만 교만해져서인지 무고한 대신을 살해하였다가 이에 반발을 사 살해당해 벌인다.[* 이것이 진나라의 문제점 중에 하나였는데 진나라는 패권국이긴 했지만 정나라나 노나라처럼 몇몇 유력 가문의 기세가 센 나라였고 때문에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군주가 있으면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그러지 못하면 유력 가문들에 의해 나라가 좌우될 수 있었다. 그래서 영공과 여공의 실정으로 인해 점점 권력이 유력 가문들로 넘어오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죽은 여공 다음으로 즉위한 사람이 도공이다. 도공은 즉위 후 무능한 신하들을 축출하였고 정나라와 싸워 이겼으며 서융과 관계를 돈독히 하고 제후들과 회맹을 하는 등 많은 일을 벌였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진(陳)과 정은 진나라의 편에 섰는데 이 두 나라가 진, 초 양국 사이에서 더 강한 쪽에 빌붙은 것을 감안하면 이 시기에는 어느 쪽이 우세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도 이 시기의 초나라는 공왕의 치세로 장왕이 이룬 패업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대였다. 다만 도공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도공은 14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해 29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했는데 도공 사후의 진나라 군주들은 그에 미치는 능력을 보이지 못했고 때문에 도공 사후 진나라의 권력은 본격적으로 유력 가문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