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추승균 (문단 편집) === 쇠퇴하지 않는 남자 === 나이가 들면서 기량이 쇠퇴할 만도 했지만, 추승균의 자기 관리는 무서울 정도였다.[* 카더라 뉴스에 따르면, 늦여름 오프시즌이 되면 용인 KCC 훈련체육관 뒷편 산으로 KCC 선수들이 자주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추승균은 맨 선두에서 후배들을 끌고 올라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상민(농구)|이상민]]은 중간에서 켁켁대며 쉬고 있었다 카더라.~~ ~~[[조성원]]은 본인 무릎 아픈것도 모르고 엄청 뛰고 있었다 카더라.~~] 여전히 두 자릿수 평균 득점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줬다. 2008-09 시즌 정규 리그 3위로 챔프전에 올라간 KCC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와 맞서며 접전을 벌였는데, 7차전까지 가는 접전에서 웃은 것은 추승균과 KCC였다. 추승균은 이 챔프전에서 평균 14.6득점을 집어넣으면서 맹활약했고, 마침내 생애 첫 [[KBL 챔피언결정전|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이 수상이 KBL에서 10년 넘게 뛰면서 얻은 첫 개인 타이틀이라는 점은 뭔가 아이러니했지만. [[파일:추승균이 우승반지 5개 얻었다..jpg|width=210]] (추피니티 건틀렛?) 추승균은 그 다음 시즌인 2009-10 시즌에는 다소 부진하며, 생애 처음으로 두 자릿수 평균 득점에 실패했다. 하지만 챔프전에서는 12.0득점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리고 2010-11 시즌에 다시 정규 시즌 평균 10.1득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팀의 주축은 이제 [[하승진]], [[강병현(1985)|강병현]] 등에게 넘어갔고 본인은 조연에 더 가까워졌지만, 팀의 기둥으로서 추승균이 가진 위상은 이 둘이 감히 넘보기 어려웠다. 불행히도 챔프전 3차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되면서 이렇다 할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KCC의 우승으로 추승균은 생애 다섯 번째 우승 반지를 차지했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44336427.13.jpg]] 2011-12 시즌에는 전성기만큼의 활약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확실히 나이가 든 모습이기는 했다. 하지만 꾸준하게 득점을 쌓아가더니 마침내 2012년 2월 26일, 전주에서 열린 SK전 2쿼터에 KBL에서 두 번째로 1만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기서 KBL이 인색함을 발휘했다. 어떤 프로 종목이든지 간에 마일스톤이 달성되면 협회 측에서 큰 기념 행사를 벌여줄 만한데, KBL 측에서는 '''달랑 꽃다발과 기념 패를 전달한 게 전부'''였다.] 2011-12 시즌 PO에서 분투했지만, [[전태풍]]의 부상 공백을 막을 수 없었던 KCC는 모비스에게 0:3 완패를 당했고, 추승균은 3차전 종료 후 인터뷰에서 은퇴에 대해서는 구단과 상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결국 3월 15일 은퇴 기자 회견을 가지기로 결정했음을 알렸다. 15시즌 동안 남긴 기록은 통산 738경기 10,019득점(역대 3위) 1,715리바운드(역대 15위) 2,066어시스트(역대 8위) 552스틸(역대 13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