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추수감사절 (문단 편집) == 유래 == [[성경]] 중 구약 성서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민족적 경험과 감사의 [[축제]] 전통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3대 명절은 모두 감사절이었다. 유월절(Passover)은 민족 해방에 대한 감사절로 기념하였고, 봄의 초실절은 첫 열매의 수확에 대한 감사절이었다. 가을에는 추수하여 곡식을 저장하고 나뭇가지로 집을 지으며 그 안에서 7일동안 지내는 수장절, 즉 초막절을 지켰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을에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에 대한 감사제 의미의 절기는 초막절이다. 초막절은 한자어로, 직접 말로 풀이하면 '''풀로 장막(집)을 지으며 기념하는 절기'''이다. 초막절의 다른 명칭은 수장절, 추수절 등이 있는데 수장절은 곡식을 거두어 저장한다는 의미이고, 추수절은 가을에 곡식 추수함을 기념한다는 의미이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모두 다 초막절을 가리킨다. 즉, [[성경]]을 기준으로 [[하나님]]께 가을 추수에 대해 감사제를 드리는 절기는 초막절이다. 유대교에서는 지금도 이 초막절을 중요한 명절로 구약 율법에 따라 기념하고 있다. 초막절은 오늘날 양력으로 9월 말~10월 경이다. 하지만 이 초막절과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추수의 의미 빼고 어떠한 연관도 없다. 즉 [[칠면조]]를 잡고 11월 즈음에 드리는 추수감사절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1620년경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영국인]] [[청교도]]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의미로 칠면조를 잡고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시초로 본다. [[스위스]]의 개혁파 교회에서는 9월에 지켰고, 영국은 8월 1일 라마스날(Lammas Day)을 추수감사절로 지낸다. [[독일]]의 복음주의 교회는 성 [[미카엘]] 축일(9월 29일)[* [[천주교]]의 [[축일]]에서 유래한 날이다. 천주교에서 원래 이날 성 [[미카엘]] 대천사를 기념했다. 천주교에서는 1970년 전례개혁 이후로는 이날에 미카엘 대천사뿐만 아니라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까지 모두 기념한다.]이 지난 후 [[일요일]]을 감사절(Erntedankfest)로 지켰다. 네덜란드 개혁파의 경우 처음에는 스위스처럼 9월에 지켰지만 현대에는 11월 첫째 주일 후 수요일을 감사의 날(dankdag)로 지키고 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영국]]의 전통이었던 추수행사에서 유래했으며, [[성공회]] 교도들에 의하여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이 미국에 건너가 [[1620년]]부터 시작되었다.[* 예배 방식에서 [[성공회]]식을 따르는 걸 찬성한 [[루터교]]는 박해를 면한 반면 [[장로회|장로교]], [[침례회|침례교]], [[퀘이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박해를 받았다. 국교회에 의해 청교도가 박해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박해 자체보다는 [[가톨릭]]을 박해하지 않는 영국 국왕 [[제임스 1세]]에게 실망해서 떠났다. 사실 제임스 1세는 가톨릭도 익숙한지라 가톨릭을 굳이 박해하지 않았고 대신에 '''로마 교황 대신 짐에게 충성하라'''는 요상한 지시를 내렸고 이에 반발한 가톨릭 신자들이 국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기까지해 가톨릭은 그 뒤로 박해받아 가톨릭 신자들도 결국 청교도들을 따라 [[버지니아]]로 떠났다. 가톨릭의 [[교황수위권]] 자체를 부인하는 저딴 지시를 가톨릭 신자들이 따를 수 없었다.] || [[파일:external/thebluegrassspecial.com/pilgrims-progress5.png|width=100%]] || [[파일:external/4.bp.blogspot.com/20071121-first-thanksgiving.png|width=100%]] || || 흔한 이미지 || 실상[* [[아메리카 원주민]] 알곤퀸 부족 사람들과 백인 남성들이 탁자에 앉았다. 다만 곡물들이 너무 많은데, 첫해 수확에 성공한 것은 [[옥수수]]뿐이었다. 자체적인 지식으로 시도한 [[밀]]과 [[보리]] 농사는 실패했다.] || [[아메리카 원주민]]이 [[뉴잉글랜드]]로 이주한 [[영국인]] 청교도들을 도와주고 먹여살려서 추수감사절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1960년대]] 공존정책을 위해 널리 퍼진 허구적 이야기다. 다만 이들이 도와주고 먹여살려줘서 초기 정착민들이 생존이 가능했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초기 정착민들은 정착 스킬이 전무하고 개념도 없었다. 단적으로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있었던 100여명 중에서 [[농업]]이나 [[어업]] 등의 생산직 종사자는 아무도 없었고, 농업 도구와 종자는커녕 [[낚시]]를 위한 낚싯대 하나 가져간 사람이 없었다. 이러니 당연히 도착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절반 이상이 죽어나갔다. 만약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인 알곤퀸족이나 모히칸족들이 종자를 나눠주고 [[옥수수]] 농사 기법 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이들은 모조리 다 죽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때는 [[영어]]도 할 수 있는 원주민이 몇 명 존재했다. 이 중 하나인 [[왐파노아그]]족 출신의 [[티스콴툼]](스콴토)는 유럽인들에게 2번이나 노예로 잡혔다가 탈출한 사람으로, 메이플라워 호가 도착하기 1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했다. 그리고 메이플라워 호가 도착하고 2년 후에 역병으로 죽었다. 당시 [[잉글랜드]]인들이 이미 남부 [[버지니아]] 일대를 식민지화한 지 오래여서 원주민들도 영어를 할 줄 알았다. 남부의 [[세미놀]]족, [[체로키]]족만 해도 [[스페인인]] [[콘키스타도르]]들과 접촉하며 이들에게 말을 배워서 [[스페인어]]와 [[라틴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북동부 원주민인 알곤퀸족들이 백인들을 도와준 데는 사실 이유가 있었다. 이웃에 강성한 부족이 자꾸 영역을 침범하고 있던 터라 [[화승총]] 같은 강력한 무기를 가진 백인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먹을 거 주고, 옥수수 농사도 가르쳐 줬다. 이런 우호적인 관계는 그 적대 부족이 망하고 나서 깨졌다. 비슷하게 북미 남부의 [[틀락스칼텍]]도 적대적인 [[아즈텍]]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자진해 [[스페인인]]들에게 동맹을 자처하고 이후 스페인의 든든한 협력자가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처음부터 백인과 피 터지게 싸운 인디언은 플로리다 쪽 세미놀족이며, 이들은 19세기 미국이 플로리다를 매입한 뒤에도 백인 통치 자체를 전면거부해 결국 미군이 절멸시켰다.] 그러니까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종교적 의미만이 아니라 미국 정착이 시작되었다는 의미가 강한데, 이 기준에서 보면 딱히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그리고 50년도 지나지 않아서 정착민들은 저 원주민 부족과 전쟁을 벌이면서 확장을 시작한다. [[필립왕 전쟁]]에 등장하는 왐파노아그 부족이 바로 이미지 속의 원주민들이다.[* 이때는 그동안 새로운 이주민들이 많이 들어와서 초기 정착민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며, 그나마 딱히 통수를 친 것조차 아니다. 이 지역의 부족들은 다양했고 상황에 따라 외교관계가 바뀌곤 했다.] [[1789년]] 11월 26일 [[조지 워싱턴]] 초대 [[미국 대통령]]에 의하여 처음으로 국경일로 제정되었다. 이후 날짜가 변경되거나 혹은 폐지되거나 하는 등 변화가 있다가 1941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국경일로 하자고 명령했고 그렇게 미국 의회에서 [[11월]] 넷째주 목요일로 결정하여 [[공휴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내려왔다. 참고로 왐파노아그인들은 필립왕 전쟁 때 대다수가 사망했으며, 2010년 기준으로 2756명의 후손이 남아있다. 이들은 추수감사절 무렵에 '국가 애도의 날(National Day of Mourning)'이라는 시위를 하며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 직면했던 역사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에 대한 인식을 가르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