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항 (문단 편집) === 몽골의 침입과 항전 === [include(틀:관련 문서, top1=여몽전쟁/무신정권 비판)] 자신의 반대파들을 숙청하던 1251년에 [[몽골]]에서 제4대 [[몽케 칸]]이 출륙 및 [[개경]] 환도와 고려 국왕의 입조를 요구하자 1252년에 이현을 몽골로 보내면서 그에게 금년 6월에 출륙하겠다고 얘기하도록 지시했다. 이현이 몽골에 이르면서 몽케 칸에게 최항이 지시한 바에 따라 대답했으며, 몽골에서는 출륙을 확인하기 위해 이현을 몽골에 머물도록 하면서 도케, 아투 등을 보내 고종이 육지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들 사신들이 돌아오는 대로 군사를 보내겠다고 얘기했다. [[몽골]]에서 국왕의 출륙을 요구해오자 응하는 척하면서 승천부에 새로운 궁궐을 짓고, 도케 등을 따라온 이현의 서장관인 장일이 이를 고종에게 비밀리 알리면서 고종이 이를 묻자 최항은 "강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면서 몽골 사신 접견을 강력하게 반대하자 공경들 모두가 최항의 뜻에 맞추었다. 고종이 이를 따라서 신안공 왕전을 육지로 나가게 했으며, 이에 도케, 아투 등은 왕이 명을 듣지 않았다고 분노하며 몽골로 돌아갔다. 1253년에 고종이 문하시중 판리부 어사대사에 임명하자 이를 사양했으며, 고종이 후로 봉하였다. '구요당'을 대궐 서쪽에 지어 완성하자 고종이 이를 관람했는데 친시 20인, 구사 20인, 진배파령 20인 등에게 처음으로 벼슬을 주었으며, 또한 감독관인 상장군 박성재의 아들 1인에게 진배파령을 허락하면서 공장들도 차등에 따라 상을 주었다. 이때 천도하면서 [[몽골]]이 출륙을 독촉했으며, [[야쿠|예케]], [[아무칸]] 등이 [[홍복원]]을 대동한 [[몽골군]]이 제5차 침입을 단행하면서 가는 곳마다 잿더미가 되었다. 이때 [[영녕공]] 왕준과 이현 등이 몽골의 대칸이 크게 노했기 때문에 출륙 요구에 응하라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대부분이 "태자 또는 [[안경공]]을 보내어 출영하자"는 의견을 내세우자 "출영하면 태자나 안경공을 잡아서 항복을 요구할 것"이라 설득하여 출영하자는 의견을 중지하도록 했으며, [[충주]]성 전투에서의 [[몽골군]]의 패배, 예케의 병으로 인한 철수로 몽골군이 불리해지자 안경공 창을 인질로 보내어 몽골군을 철수시켰다. 1254년 음력 7월에 냉혹함이 차가울 정도로 잔인한 [[자랄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이 제6차 침입을 개시했다. 최항은 북계병마사의 보고를 받자 전국에 계엄령을 내리고 5도 안찰사, 3도 순문사에게 지시하여 각 지방의 백성들을 독촉하여 산성이나 해도로 들어가게 했다. 몽골군은 계속 남진을 하면서 고종의 출륙과 항복을 요구했으며, 이에 회의에서는 태자나 안경공 창을 보내자는 의견이 다시 나왔지만 실권자였던 최항이 이를 반대하고, 계속 사신을 보냈다. 이 때문에 [[몽골군]]에게 "철수하면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으며, 몽골군은 "[[고려]]가 우리의 요구를 실행해야 철수하겠다"는 등의 외교적인 마찰이 계속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몽골군의 공격으로 고려 본토는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나중에 충주성, 상주산성의 승리로 강화를 체결하게 되는데 이 해에 몽골이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수령을 처벌하고 이현을 처형한 걸 구실로 삼아 다시 출륙을 요구하자 최항 자신을 비롯한 이응렬, 주영규, 유경 등은 이를 가지 않고, 오로지 국왕인 [[고종(고려)|고종]]만이 잠시 출륙하게 되었다. 이렇게 [[몽골군]]이 출륙을 요구하면서 침입하는 와중에 최항은 집에서 잔치를 열고는 재상과 추밀원이 [[격구]]를 태평하게 관람했으며 왕족, 재상과 추밀원, 승선, 문•무 4품 이상 등을 대접했다. 1255년에 고종이 식읍을 더 봉하면서 박성재 이하 공장에 이르기까지 상을 내리자 이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중서령 감수국사에 올랐으며, 신급제 곽왕부 등이 자신을 만나자 누각에 올라가 그에게 화주를 주었다. 그러나 1255년에 [[자랄타이]]를 대장으로 한 몽골군이 부장인 예수타이, 보포타이와 [[홍복원]], [[영녕공]] 왕준을 대동하여 제7차 침입을 하여 여러 곳을 공격하자 몽골에 갔던 [[김수강]]이 몽골군이 철수하면 출륙 환도와 국왕의 입조를 한다는 조건으로 [[몽케 칸]]을 설득하여 이 해에 몽골군이 철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