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항 (문단 편집) === 후계자 정쟁 === 만전의 어머니는 폐출 [[기생]]이었던 서련방이라는 여인으로 미천한 창기 출신 [[천민]]이었다.[* 일명 '''일천즉천'''. 부모 중 한 쪽이 천민이면 자연스레 천민 신분이 된다는 개념으로 고려시대에 본격화되었다가 [[태종(조선)|태종]] 대에 [[종부법]], [[세종(조선)|세종]] 대에 [[종모법]]으로 전환되었으나 그 인식은 바뀌지 않아서 신분이 철폐되는 19세기말 [[갑오개혁]] 때까지 이어진다.] 고려시대 당시에는 원칙적으로 남자 후손이 대를 이어야 했지만 최항은 어머니가 천민인 폐출 기생으로써 그의 신분 자체가 '''[[서얼]]에 차남'''이었기 때문에 최우의 사위인 [[김약선]]이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정권을 잡기 이전에는 [[송광사]]의 [[승려]] 생활을 하면서 [[쌍봉사]]의 주지로 있었다. 자기 형인 만종과 마찬가지로 송광사의 승려일 때 문도들을 모으거나 재산을 모으는 데만 열중해 많은 액수의 금, 비단, 무려 50만 석에 해당하는 쌀을 [[고리대]]로 가혹하게 모았다. 쌀들을 백성들에게 대여하면서[* 이것도 백성들이 필요해서 빌려간 것이 아니라,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백성들을 협박하여 강제로 빌려가게 했다.] 이자를 만들어 추수가 되면 독촉하고, 도적을 고용해 백성들을 폭행과 협박 등으로 위협하여 백성들의 재산을 마구 걷어갔으며, [[가렴주구]]하여 백성들은 낟알이 남지 않아 조세를 바치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그가 거느린 문도들은 서로를 '관인'이라 호칭했으며 예쁜 유부녀를 [[강간]]하거나 역마를 자신의 것처럼 타는 등 제멋대로 불법적인 행위를 실행했는데 그의 제자였기 때문에 각처 부서에서는 감히 간섭하지 못했다고 한다. 원래는 정권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매부 김약선이었지만 최항(만전)의 음모와 최항의 누이이자 김약선의 아내였던 최씨의 무고로 김약선이 억울하게 최우에게 숙청당하면서 후계자 자리를 차지했다. 아버지인 최우가 대제 임익에게 글, 시랑 [[권위(고려)|권위]]에게 예법을 가르치게 하여 이를 배웠으며 아버지에게서 가병 500명을 받았다고 한다. 제23대 고종 35년인 1248년 승려 신분인 '공자'라는 지위에서 [[환속]]하면서 환속한 이후부터 좌우위 상장군, 호부상서 등을 거쳐 추밀원지주사 등의 [[벼슬]]을 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