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항 (문단 편집) == 평가 == 최항의 집권은 집권 과정부터 꽤나 진통이 심했는데, 당장 부친 [[최우]]의 경우에도 동생 [[최향]]과의 권력 투쟁이 있었지만, 최항 본인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심한 권력 투쟁을 겪어야 했다. 최항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승려]] 생활 때 했던 [[불법]] 행위들로 인해 [[관리]]들로부터 그의 자질을 의심받았기 때문. 앞서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최우의 사위 [[김약선]]은 [[신종(고려)|신종]](제20대) 대에 문하시랑평장사를 하던 [[김봉모]]의 손자이면서 동시에 평장사 [[김태서]]의 아들이었던 지체 높은 [[신분]]의 자제였던 것에 비하면 최항은 어머니 서련방이 [[천민]](창기) 출신이라는 점이 치명적인 컴플레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고려]] 신분 사회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었으며, 이러한 약점으로 인해 그는 정권을 이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히 최씨 정권 내부 인물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정적]] 송국첨을 우산기상시로 삼거나 1251년 내부 반대파들을 제거했는데, 이 때문에 세력이 약화되어 아들 [[최의]]가 뒤를 잇지만 곧 [[김준(고려)|김준]]을 포함한 반대파에 의해 목숨을 잃으면서 최씨 정권은 막을 내렸다. 조부 [[최충헌]]과 부친 최우 시대의 문제점[* [[교정도감]] 개설로 인한 국정 운영의 혼잡함과 [[삼별초]]([[무신정권]]의 [[사병]] 집단)의 정예화로 인한 정규군의 질적 하락, 최씨 정권 구성원들의 [[부정부패]] 등이 있었다.]들이 최항 본인 대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항은 부친 최우로부터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김약선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후에 김약선의 아들 김미가 외숙부 최항을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전 추밀원부사 주숙도 최우가 사망하자 [[왕정]] 복고를 노리며 거병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문제는 최항이 자신의 권력 독점을 위해 제거해야만 했던 이들이 모두 선대 최우 정권의 핵심들이었다는 점으로, 이들의 제거는 최씨 정권의 분열을 의미하였다. 실제로 최항의 [[권력]]은 할아버지 최충헌과 아버지 최우에 비해 매우 약화된 상태였다. 최우에게 힘을 실어준 [[여몽전쟁]]이 매우 장기화되면서 고려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몽골]]과의 강화를 통해 [[전쟁]]을 그만 빨리 끝내자는 [[여론]]이 서서히 일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권력 기반과 능력치 모두 최우에 비해 심각하게 딸렸기에 여러가지 뻘짓을 저질렀다.[* 최우 정권 시기에 중용받던 [[귀주성 전투]]의 전쟁 [[영웅]]인 명장 [[김경손]]을 죽여버린 것이 대표적인 실사례라 할 수 있다. 본래 최우는 탐욕스럽고 잔혹했을지언정 사리분별 능력은 있어서 김경손의 형 김약선을 최우의 딸이 한 모함을 듣고 처형해버릴 때에도 김경손을 딱히 [[연좌제]]로 처벌하지 않았다. 근데 최항은 김경손이 연루된 사건이 딱히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신임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죽여버렸다. 본시 [[김방경]]의 경우도 [[위도(부안)|위도]]를 지켰으나 이 김경손 살해 사건을 계기로 훗날 대몽 주화파로 돌아서게 되었다.] 최우가 실시했던 '해도 입보책'[* 백성들을 [[섬]]에 거주하게 하면서 수전에 취약한 몽골군을 상대하는 계책이었다. 고려로 쳐들어왔던 몽골군은 해전 능력이 상당히 형편없었기 때문에 적잖은 효과가 있었다.]을 재실시하면서 해안 주민이 아닌 내륙의 [[청주시|청주]] 주민들을 억지로 섬으로 옮기고 반항하는 자는 [[재산]]을 파괴하는 희대의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몽골군에 항복하는 [[고려인]]들이 매우 늘어났는데 지방관들을 살해하고 몽골에 투항하는 사례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이 때부터다'''. 물론 집권 8년만에 [[사망]]해서 두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실상 최씨 정권의 붕괴를 예고함은 물론, 더 나아가 무신정권 종말의 밑밥을 깔아놓은 시대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