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진실 (문단 편집) === 세부적인 기록 === * [[해외]]에서 대한민국 연예인, 배우로서 종합적인 인지도 또 한 단연 톱이었다. 2010년 8월 중국 '한류 드라마 속 미녀 여자 주인공 TOP 10' 조사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아시아권에서의 파워를 보여 주었기도 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79&aid=0002181456|#]] * 각종 언론과 기관에서 주관한 호감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석권했다. 그렇게 호감도가 높으니 2,30대 남성이 뽑은 1등 신부감, 가장 보고 싶은(적합한) CF 모델, 가장 예쁜 얼굴 등 다양한 조사에서 대다수 1위를 차지했다. 여러 조사 중 근검절약형 연예인에선 항상 1위를 차지하며 '저축왕 이미지'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한국이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소비의 중요성이 공유되자 최진실도 전향적 태도를 취했다. * 1990년에 부활한 스포츠조선의 [[청룡영화상]]에서 1990년 이래 1996년과 1999년을 제외하고 8번이나 독자관객들이 뽑는 인기스타상을 수상하며 1990년대에 영화배우로서 큰 인기를 얻었다. * 최진실은 자신이 연예인으로서 그렇게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말을 틈나는 대로 대중을 향해 직접 하면서 엄청난 인기가 주는 높은 긴장도를 낮추는 행동을 한다. * 최진실은 배우가 방송사 분장실을 사용하던 관행을 깨고 개인 메이크업아티스트 시대를 열었다. 아는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연예인의 자율성이 신장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때 최진실과 함께 했던 메이크업아티스트가 김선진이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662689|#]] * 1993년까지 MBC에서 활동하던 최진실은 톱스타답게 1994년 2월 SBS로 스카우트될 때 최고 대우인 '회당 300만 원에 드라마 출연 100회' 전속 계약을 맺었다. 즉 드라마 100회 출연을 하면 매회 300만 원씩을 받아 총 수입이 3억 원이 된다는 것. MBC에서 활동할 때에는 방송사 자체 출연등급표에 따라 출연료를 받았다.[* [[채시라]], [[김희애]] 등 역시 그랬는데, 주 수입을 CF모델료로 채워넣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신생 방송사 [[SBS]]는 거물 연예인들을 확보하기 위해 거액의 출연료를 제시하기로 방송계에서 유명했는데[* 지역민방이 생긴 1995년 전까지만 해도 수도권 한정 신생 민영방송이었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거액의 출연료를 제시함으로써 전국 방송 제한에 따른 손해(CF 계약 만료 등)를 메꿔주었다. 즉 MBC나 KBS는 전 지역으로 송출이 되나 SBS는 수도권만 송출이 돼 광고 효과가 떨어져 광고주 입장에서 SBS 출연 배우는 광고 모델로서 메리트가 떨어졌다.], 최진실도 방송사 이동으로 한순간에 역대 최고의 출연료를 받게 되었다. 이후 SBS에서 2년간 드라마 [[사랑의 향기]][[아스팔트 사나이]][[째즈]] 등에 출연하면서 SBS 인지도 상승에 기여한다. 하지만 100회를 다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1995년 MBC에서 드라마 출연 제의가 들어오고 최진실은 MBC 주말연속극 [[아파트(드라마)|아파트]]에 출연하게 된다. <아파트> 출연은 MBC 특채 배우로서 최진실 스스로 MBC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MBC가 SBS 전속 배우 최진실을 다시 출연시켰다는 점, SBS와 전속 계약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SBS가 기꺼이 타방송사 출연 그것도 방송사들의 간판 드라마인 주말극에 출연하는 것을 허용해준 점에서 최진실의 위상을 또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최진실이 <아파트>에 출연 중인 상황에서 1996년 3월 SBS는 최진실과 전속 계약을 다시 맺었다. 이후 SBS는 여러 번 최진실에게 드라마 출연을 제안하게 되는데 최진실은 영화배우CF모델이기도 했기에 영화 촬영 등을 이유로 모두 고사하게 되면서 출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난 무렵인 1997년 MBC에서 드라마 출연 제의가 들어오고 최진실은 MBC 미니시리즈 [[별은 내 가슴에]] 출연을 결정하게 된다. <별은 내 가슴에> 출연에 대해서 SBS는 1995년때와는 달리 계약대로 최진실에게 위약금을 요구했고 MBC는 그 위약금을 대신 지급하기로 했다.[[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1997&M=02&D=17&ID=9702172602|#]] 그러면서 최진실은 SBS 전속 배우에서 MBC 전속 배우가 된다. 즉 방송사 간에 최진실 쟁탈전이 그만큼 치열했다는 의미다. * 1994년말에 MBC <신(新)인간시대>에서 신년 특집으로 '앞서가는 한국인 50인'이라는 제목으로 분야 별 스타를 조사했는데 최진실은 여자 연기자 부문 1위에 선정되었다. 1994년 11월 29일 서울시는 1394년 서울을 수도로 정한 지 6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타임캡슐을 파묻는 행사를 하고 '역사적으로 남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최진실의 인터뷰도 거기에 담겼다. 이 타임캡슐은 400년 후인 2394년에 개봉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056&aid=0010099890|#]] * 최진실은 특히 데뷔 10년차인 1997년에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모두 최대 흥행작들을 양산했다. 일단 3월에 MBC 트렌디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에 의상디자이너 '이연이'로 출연해 연예계 입문 10년차에도 여전히 발랄한 이미지를 선보이며 신세대들의 사랑을 받았다. 7개월 후인 10월에는 MBC 주말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에서 성숙한 커리어우먼과 똑똑한 기혼자 역할을 맡아 58회 동안 극의 중심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대 그리고 나> 출연은 최진실의 주말드라마 징크스도 완전히 깨버리는 동시에 선배 배우들로부터도 높이 평가받는 계기가 된다. 즉 명실상부 연예계 내외부에서 무게감 있는 배우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대 그리고 나>는 평균 시청률 42.5%를 기록하게 되면서 최진실 최대 흥행 드라마로 남았다. <별은 내 가슴에>도 평균 시청률 40.2%였다. 스크린에서도 11월에 개봉한 영화 [[편지(영화)|편지]]에 국문학과 대학원생 '정인'으로 출연해 서울에서만 72만 명의 관객을을 모으며[* 전국 관객수는 약 200만 명으로 추정] 그해 한국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이는 최진실 역대 필모그래피 중 최고 흥행 영화였다. <편지>는 러시아 유학파 배우 [[박신양]]과 호흡을 맞췄고 좋은 하모니를 보여주었다. * 1997년 야망을 이룬 유명인 조사에서 정치인 1위 김영삼, 경제인 1위 정주영, 스포츠인 1위 박찬호와 함께 연예인 1위는 최진실이 선정되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4160072|#]]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 영화스타의 스타파워 분석 보고서를 냈고 최진실은 [[최민수]]와 함께 관객동원력이 가장 뛰어난 배우로 꼽혔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18242|#]] * 1992년 '저축의 날'에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대통령 [[노태우]]는 저축유공자 최진실을 청와대 오찬에 초대했다. * 1992년 [[KBO 한국시리즈]]에서 시구를 했다. 한국시리즈 연예인 시구는 최진실이 최초였다. *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19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되었다. 최진실은 금융실명제 홍보 모델로 발탁되어 투명한 금융 흐름이 가능해졌음을 전 국민에게 알렸다. 금융실명제 정착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1994년 김영삼은 최진실을 [[청와대]] 오찬에 초대했다. * 인기 스펙트럼이 넓어 거의 모든 연령대의 유권자들한테 호감형이었기 때문에 서민 이미지가 아쉬웠던 여당 [[신한국당]]에서 1996년 최진실을 자당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연예인으로서 정당의 광고 모델이 된 것이다. 이로써 정치가 최진실을 타고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 생활 정치가 도래하게 되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라는 직업 군인 출신 대통령 시절에는 권위주의가 팽배했는데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들어선 '김영삼 정부'는 그 시절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었고 최진실이라는 캐릭터가 그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묘수였던 셈이다. [[신한국당]]에서는 "권위주의 시대 정치를 탈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하며 "최진실의 인기에 누가 되지 않도록 우리 당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고, 최진실도 "모델로서 인연을 맺은 것일 뿐이다, 정당에 입당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였다. *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을 [[인터뷰]]하러 가기도 했다. 이듬해 8월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국가홍보 CF에도 출연[* [[최불암]], [[조용필]], [[채시라]], [[심은하]], [[배용준]], [[HOT]], [[S.E.S]] 등 여러 스타들과 함께 출연했다.]하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최진실을 대한민국 최고 국민배우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 1998년에는 건국 50주년을 맞이해 MBC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건국 50년 최고 연예인' 조사[* '해방 이후 지난 50년간 활동한 우리나라 모든 연예인 중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응답자에게 최대 3명을 요구함.][* 출처는 [[https://panel.gallup.co.kr/Gate/Panel/F023.aspx|갤럽DB]]]에서 [[그대 그리고 나]] 등으로 정상의 인기를 여전히 누린 덕분에 [[탤런트]]영화배우 부문에서 전 연령층을 합쳐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연령별로는 신세대층(11~24세)에서 3위(40명), 청장년층(25~39세)에서 2위(44명), 중년층(40~59세)에서 5위(26명)를 기록하며 전 연령층에서 고른 인기를 얻어 기존과 당대의 최고 인기 배우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본 조사가 '건국 50년 최고 연예인' 조사이기 때문에 연예계 전 부문을 합쳐 지난 50년간의 연예인들을 대상으로도 국민들의 의견을 구했는데, 최진실은 신세대층에서 공동 11위(13명), 청장년층에서 4위(26명), 중장년층에서 6위(19명)를 기록하며 역시 비교적 모든 연령층에서 고른 인기를 얻어 전체 연예인 중 5위를 차지했다.[* 1위는 1995년 이후 연예계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코미디언 [[김국진]]이, 2위는 흑백TV 시절부터 국민적 인기를 누린 20세기 한국 최고의 연기자 [[최불암]]이 차지했고, 엄청난 가창력으로 신드롬급 인기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1980년대 연예계를 리드한 [[조용필]]이 3위, 1990년대 말 최고의 인기를 누린 시대의 아이콘 [[김희선]]이 4위였다.] 이를 통해 1990년대 전 기간 동안 최진실이 연예계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였고 그 영향력과 파급력을 짐작할 수 있다. * 2000년 하반기에 2000년대까지 공신력 있는 조사기관이었던 <리스피아르>에서 진행한 연예인 인기도 조사에서 여자탤런트 부문 1위를 차지했다.[[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2004210041879888&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pos=&sig=hgjTSY-gihRRKfX2h6j9Sl-ALmlq|#]][* 2000년 상반기엔 해당 조사에서 4위였다.] 그리고 이런 까닭에 MBC와 전속계약을 다시 맺었다. * 2002년 1월 오랜만에 예능에 출연하였다. KBS <서세원쇼>에 최진영과 함께 출연했고 홍진경, 정선희 등도 코너를 장식해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면서 이 회차 시청률이 28%로 대폭 상승해 주간 시청률 5위를 기록하는 등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했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14&aid=000000285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