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종현 (문단 편집) == 일화 == * SK 직원들 사이에서는 인간적인 평판이 매우 좋았다고 하는데, 한 성질 할 것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직원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했으며, 아들인 [[최태원]] 역시 SK 직원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좋다고 한다. * 일찍 타계한 형 최종건 회장의 세 아들들도 친자식처럼 아꼈다고 한다. 공식 석상에서도 "내 아들은 다섯명이다." 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 자신이 암 투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회사인 [[SK케미칼]]을 통해 신약 개발을 적극 독려했는데, 임원들과 함께 출석한 보고 자리에서 당시 SK케미칼 연구원이던 김대기 박사(현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가 개발 중이던 신약에서 부작용이 발견되어 상용화에 실패했다는 발언을 하고 분위기가 매우 어두워졌다. 그런데 최 회장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고는 '''"김 박사, 그렇다면 반은 성공한 것 아닌가?"'''라는 뜻밖의 발언을 한다. 주변의 임원들은 물론 김박사 본인도 당황했는데, 그 다음에 내던진 말이 압권. '''"부작용을 미리 발견해서 그것까지 해결하면 더 완벽한 신약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앞으로 더 노력하시오."''' 참고로 이 일화는 1999년 10월 10일 [[MBC]]에서 방영된 [[성공시대]]에서 다뤄진 바 있다. * 특히 이 당시 연구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연구에 나서도록 독려한 에피소드도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대유행 이후 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 개발 성과가 부각되자 과거 최종현 회장의 격려와 바이오 산업을 향한 의지가 재평가되기도 했다. ([[빌 게이츠]]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의 코로나 백신 개발 성과를 극찬하는 서신을 보냈는데 이 서신에 등장한 업체가 SK바이오사이언스였다.) 당시 김대기 박사가 "신약이 나오려면 최소 10년은 물론이고 20년도 기다려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최 회장은 '''"개발 과정이 그렇다면 20년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라면서 '''"연구에 실패를 한다고 하더라도 실패를 통해 얻는 것이 더 많으니 그 실패를 바탕으로 더 연구에 매진해보시오"'''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 결과 SK는 1호 항암 신약인 '선플라'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SK그룹의 회장이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는데도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구멍난 양말을 신고 다녀서 회의 중에 임원들이 그걸 목격하고 민망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며,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식사는 항상 구내식당에서 했다. 실제로 전경련 회장 재임 당시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근무한 경제학자의 증언에 따르면 최 회장이 경제학자들과 한경연 연구위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점심식사를 할 때마다 어김없이 [[육개장]]이나 [[설렁탕]] 같은 [[국밥|국물요리]]에 반찬 몇 가지만 두고 식사했다고 한다. ~~역시 국밥! 처음에는 재벌 회장과의 식사라서 엄청 기대했다가 막상 식사 메뉴를 보고 내심 실망했다고..~~ * 고려대학교 총장 [[염재호]]와 연세대학교 총장 김용학이 [[한국고등교육재단]]의 도움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왔다. 염재호 총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말도 안되는 공고였다. 미국에 유학을 가는데, 학업 외 아무 조건 없이 엄청난 등록금과 5년 동안의 생활비까지 보장해 준다고 했다. 혹시 이상한 종교단체나 중앙정보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막대한 지원금 대비 으레 있을 법한 ‘의무, 근무’ 관련 조건이 단 한 줄도 없었기 때문에 재단을 의심했다고 한다. 실제로 최종현 회장이 장학생들에게서 받은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가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한다는 것은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하는데,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는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재 SKY 대학 총장 셋 중에 무려 두 명!~~ 염재호는 최종현 회장의 영결식에서 고등교육재단 장학생 대표 자격으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퇴임 후에는 SK의 '''이사회 회장'''으로 돌아온 것은 덤. * [[장학퀴즈]]를 후원하는 과정에서도 에피소드가 있다. 최 회장은 장학퀴즈 장원에 오른 학생들을 데리고 주기적으로 식사를 했다. 그럴 때마다 최 회장은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고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꿈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그러던 최 회장은 대뜸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대학 졸업하고 [[SK|우리 회사]]에 오면 안돼! [[SK|우리 회사]] 오지 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분 같은 인재들은 머리가 좋으니까 더 좋은 회사로 가서 나라를 위해 일해야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한 인재 양성에 대한 최 회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실제 장학퀴즈 출연자 중 SK 직원은 드물긴 했다. * [[1980년대]] 초반 [[장학퀴즈]] 500회 특집이 방영될 무렵 최종현 회장은 선경그룹 임원 및 장학퀴즈 제작진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간 장학퀴즈에 투자한 돈이 얼마냐”고 물었다. 배석한 임원이 “150억~160억원 가량 된다”고 답하자 최 회장은 “그럼 선경이 장학퀴즈로 번 돈이 얼마나 되냐”고 되물었다. 임원들이 답을 머뭇거리자 회장은 “7조원쯤 된다. 기업 홍보 효과가 1조~2조원쯤 되고 5조~6조원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교육시킨 효과”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 조림사업을 위해 임야를 매입하다 보니 부동산 장사를 한다는 괜한 오해도 받았고, 그룹 내부에서는 부지를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초반 한 임원이 “이왕이면 경기도 수도권 근처의 산에 투자하는 것이 산간 오지의 땅을 사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하고 말했다가 최종현 회장이 “내가 땅장수인 줄 아느냐”며 혼쭐을 났다는 일화가 있다. * 최 회장은 평소 “우리는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며, 기업의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었다”고 언급했다. ‘돈 버는 것만이 기업의 목적이 아니다’는 철학이 확고했으며, 국가나 사회가 갖고 있는 고충을 해결해 함께 발전하는 것을 기업과 기업인의 진정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 같은 경영철학에 맞춰 국가 및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1995년 수원시에 [[선경도서관]]을 만들어 기부했다. 당시 이 도서관은 수원 소재 3개 시립도서관 중 최대 규모였으며, 국내 전체적으로도 톱10에 드는 규모였다고 한다. 최 회장은 SK 성장의 터전이 된 울산 지역에 녹지 공간 110만평을 확보해 [[울산대공원]]을 조성, 기부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