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종현 (문단 편집) === 인재 양성 === 최종현 회장은 인재를 가장 중시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사람이 제일 큰 자원이고, 기업 경쟁력 역시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게 최 회장의 평소 지론이었다고 한다. 그는 여느 기업가와 달리, 최종현 회장은 기업을 뛰어넘어 사회 전체를 이끌 인재를 양성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명문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1979년 SK그룹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Sunkyoung Management System)를 정립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국내 기업 중에 가장 체계적인 경영이념으로 평가받았다. 1990년대에는 이들을 더욱 발전시킨 SUPEX(수펙스) 경영기법을 정립했다. 이는 Super Excellent라는 최상의 목표를 세운 뒤 목표 달성을 위해 직원들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 최상의 성과를 내고 최고의 이익을 창출하는 기법이다. 인간의 성장을 신뢰하는 최종현 회장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SKMS와 SUPEX에 관해 강연 하는 최종현 회장의 동영상을 아트센터나비[* 최종현 회장의 아내 박계희 관장이 경영하던 워커힐미술관을 며느리 노소영 관장이 미디어아트 전문관으로 리모델링 해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에서 [[http://blog.naver.com/art_nabi/60123488803|볼 수 있다]]. 교육이나 연수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75년 3월 최 회장이 [[워커힐]] 호텔 부지 내에 300평 규모로 국내 기업 최초의 연수시설인 선경연수원(현 SK아카데미)을 설립한 것만 봐도 얼마나 사람과 인재를 아꼈는지 알 수 있다. 최 회장은 인재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보고 1974년 세계적 학자 양성이라는 목표 하에 사재를 출연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일등 국가, 일류 국민 도약과 고도의 지식산업사회 건설’이라는 100년의 목표로 출발한 세계적 석학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까지 800여 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를 비롯해 3,700 여명의 인재들을 키워냈다. 재단 설립 당시만 해도 SK는 국내 50대 기업에 겨우 포함될 정도의 중견기업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장학재단 설립을 두고 회사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최 회장은 사재를 출연하며 경영진의 불만을 잠재우고 재단 설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최종현 회장은 서울 퇴계로 요지에 위치한 5층 빌딩 한 채를 출연금으로 내놓았으며,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한다는 차원에서 재단명에도 회사 이름을 반영하지 않았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사업에는 최종현 회장 때부터 [[최태원]] 회장까지 이어져온 전통이 있다. 조건 없는 지원, 유학 전 사전교육, 유학생과의 토론 등이 그것이다. 거액의 유학비용을 지원하는 조건은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꾼이 되어 달라는 것’ 단 한 가지. 절대 SK로의 입사는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장학생들에게 강조해 왔다. 해외 유수 대학의 등록금에 5년간 생활비까지 지원해준다는 파격적인 지원이었던 반면, 의무 조항은 일절 없었다. 선발된 장학생들에게 강도높게 사전교육을 시키는 것도 재단의 전통이다. 최종현 회장은 “선진국 학생들은 강의계획서와 도서목록을 미리 입수해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해 왔다”면서 “우리나라에는 아직 해외 유명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이 많지 않으니 재단이 이 부분을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재단은 이 때부터 미국 유명 대학을 찾아가 강의계획서를 구하고 필요한 도서를 사들였다. 또 장학생 선배들이 강의계획서와 책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동안의 노력과 정성이 쌓여 높이 5m에 이르는 재단 서고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전문 원서 15,000여 권이 빼곡히 꽂혀 있고, 지하 정보실에도 19,000여 권의 장서가 더 보관돼 있다고 한다. 최종현 회장의 ‘인재보국’ 기치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발현됐다. MBC가 청소년 대상 교양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장학퀴즈]]가 광고주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처하자 당시 선경이 나선 것이다. 선경은 1973년 2월 18일 방영 프로그램부터 단독 광고주로 나섰다. 당시 TV 프로그램 중 단독 광고주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청소년 지식 경연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장학퀴즈’는 기록인증기관인 KRI 한국기록원에 의해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으로 인증 받은 바 있다. 70년이 채 되지 않은 국내 TV 방송 역사를 감안할 때 장학퀴즈 46년 방송은 유례가 없는 대기록이다. 이후 장학퀴즈는 1996년 MBC에서 EBS로 무대를 옮겼고, 총 2300회 이상 방영됐다. [[전국노래자랑]]보다도 역사가 더 길다고 한다. 2만명이 넘는 장학퀴즈 출신들은 학계, 재계, 법조계, 의료계, 언론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오피니언 리더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장학퀴즈는 한국을 넘어 중국에서도 방영 중으로, 2000년 중국 베이징TV(BTV)에서 SK장웬방(壯元榜)으로 시작, 2016년 중국 전역에 방송되는 CCTV로 자리를 옮겨 SK극지소년강(SK极智少年强)으로 방영되고 있다. CCTV 프로그램 중 기업체 이름이 붙은 유일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