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민식(사진가) (문단 편집) ==== 핍박과 고난 ==== ||[[파일:external/s29.postimg.org/coolche_33666888.jpg]]|| ||[[파일:external/s21.postimg.org/8_008_pusan85.jpg]]|| ||[[파일:external/s3.postimg.org/K_408.png]]|| ||1985년 부산, 최민식|| ||1985년 부산, 최민식|| ||1965년 부산, 최민식|| 그의 사진은 팔리지 않는 사진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의 마음에도 들지 않는 작품이었다. [[한강의 기적]] 뒤에 숨겨진 대한민국의 어둡고 가난한 모습을 왜 자꾸 들춰내서 국제적으로 망신을 시키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최민식 작가는 작품활동을 그만 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에 최민식 작가는 독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 시대가 오기까지 독재정권 하에서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아야만 했다. 정부는 전방위로 그를 압박해왔다. 작가가 생계유지를 위해 운영한 사진관에는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손님이 뚝 끊기고 말았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작가였기에 중앙정보부에 셀 수도 없이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그는 유럽의 7개국에서 총 20여회의 사진전을 개최하는 영광을 받았지만 정작 정부에서 여권을 주지 않아서 자신의 사진전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한밤중에 집에 쳐들어와 구둣발에 온 집안을 헤집어놓는 것은 예사였다. 때론 해외여행을 보내주겠다거나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등 정부에서는 온갖 회유책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가 평생을 지켜온 '''인간'''이라는 주제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모진 고초를 겪고 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의 임인덕[* 독일인 신부이다. 본명은 하인리히 제바스티안 로틀러. 2013년 10월 13일 사망] 신부였다. 베네딕토회 소속 [[분도출판사]]의 사장이었던 그는 정부의 압력으로 출판이 어려워진 최민식 작가의 사진집 인간을 출판해주기로 하고 가난한 그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 베네딕토회에서 최민식 작가를 지원해준다는 것이 들키면 임인덕 신부도 위험할 수 있었기에 모든 지원은 극비로 이루어졌다. 중정에서는 그의 창작욕을 꺾기 위해 극단의 처방을 쓰기도 했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최민식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고 최민식 작가에게 연락을 하자 작가는 자신의 작품 중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고른 500통의 필름을 비행기편으로 프랑스 문화원에 보내게 되는데, 돌연 수송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프랑스 측에서 필름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최민식 작가는 자식처럼 아꼈던 필름들을 모조리 분실하게 되는데, 훗날 밝혀진 바로는 '''프랑스 문화원과 중정이 결탁해서 꾸민 일이었고''' 그 필름들은 모조리 중앙정보부가 회수하여 폐기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행색이 꾀죄죄한데 좋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으러 다녔던 그가 [[간첩]]처럼 보였던 사람들은 그를 동네 경찰서에 신고하기도 하였다(...) [* 읽으면서 인심이 각박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사실 당시 국민들이 교육받았던 간첩 식별요령으로 놓고 봤을 때 사실 최민식 작가는 신고당할 만 했다. '''옷차림이 허름하고 유행에 맞지 않는 자''', '''남 몰래 주요 시설물을 촬영하는 자'''. 그 당시 간첩 신고를 하면 받는 포상금이 3천만원이었다고 하니 주민들은 일단 신고부터 하고 보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추운 겨울날 한창 사진을 찍고 나서 몸을 녹이고자 들어간 [[다방]]에서 갑자기 동네 순경이 들이닥쳐 그를 끌고 가는 일은 예사였고 심지어는 그가 반평생을 살아온 부산의 자갈치시장에서조차 간첩 신고를 당해 동네 경찰서로 끌려간 적이 있었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심지어는 1967년 [[울릉도]]에서 북한 간첩이 체포되었을 때 간첩의 소지품에서 하필이면 그의 사진집이 나와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적도 있었다. 만약 사진집에 싸인이라도 있었으면 아마 큰 고초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작가도 소식을 듣고 간담이 서늘해졌다고. 그렇게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던 그에게도 봄날이 찾아왔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이 시작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