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문순 (문단 편집) === MBC === 1984년 [[문화방송]]([[MBC]]) 기자로 입사했다. 같은 당 [[박광온]] 의원과 입사 동기다. 90년대에는 '[[카메라 출동]]' 코너를 맡기도 했으면 90년대말 ~ 2000년대 초에는 [[시사매거진 2580]]의 CP를 맡기도 했다. [[파일:최문순기자2.jpg|width=200]] [[파일:최문순기자3.jpg|width=400]] 1995년 MBC 노조위원장을 맡으며 언론계의 중심 인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96년 강성구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며 파업을 벌이다 강제 해직됐으나, 1997년 복직 후 1998년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았으며, 2000년 전국언론노조가 산별 노조로 전환하고 초대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2001년에는 MBC 보도국 기획취재부 차장 및 MBC 인사부 차장을 거쳐 2002년에는 MBC 보도국 사회부 차장을 섭렵하며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2005년에는 마침내 최연소 MBC 사장이 되었으며, 직후 제12대 한국방송협회 부회장을 거쳐 불과 1년후에 회장이 되었다.[* 다만 이쪽은 지상파 방송사 사장들이 1년씩 돌아가면서 하는거라서, 3년동안 잘만 재직하면 한번은 꼭 달 수 있는 직함이다.] 사장 재직 시절에는 MBC 예능의 황금기를 이끈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가 사장에 취임한지 2달 후에 무한도전 제1기 [[무모한 도전]]이 방영을 시작되었고, 이후 [[무한도전]]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국민예능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최문순의 주요 업적으로 내세워지게 되었다. 무한도전 외에도 [[내 이름은 김삼순]], [[태왕사신기]],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흥행으로 MBC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지만 그 후 [[카우치]]의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 [[삼성 X파일 사건|삼성 비자금 도청내용 보도파문]]과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황우석 사건]] 등 여러 사건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그의 후임인 제17대 사장이 바로 [[엄기영]] 이 두 사람은 후술되어 있듯 2011년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에서 맞붙었다.][* 여담이지만 그의 재임 시절 일반사회 인터넷 강사 [[최적(강사)|최적]]이 예능PD 최종 면접까지 갔고, 그의 면전에서 락스피릿을 외쳤다고 한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고, 최적은 아직까지도 이를 인생 최대 흑역사로 회상하고 있다.] 몇몇 프로에 직접 출연하여 본인의 인지도를 올리기도 했다. [[파일:최문순프란체스카.jpg|width=500]] 2005년 5월 [[안녕, 프란체스카]] 29회에 특별출연하여 촬영 중인 최문순 신임 사장 [[파일:최문순김삼순.png|width=500]] 2005년 7월 MBC 시청자 촬영대회에서 [[한혜진(배우)|한혜진]], [[김선아]] 등 당시 MBC 드라마 간판 톱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최문순 신임 사장 2008년 2월 MBC 사장임기가 만료되자 민주당에 입당했으며, 4월 9일 총선 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