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무배 (문단 편집) == 커리어 == 1989년 [[부산체육고등학교]], 1993년 [[동아대학교]] 경기지도학과(레슬링 전공)를 졸업하고 1998년 6월 [[동아대학교/대학원|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스포츠마케팅 전공으로 [[체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종목은 그레코로만 형.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4위에 오르고 1991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맹활약했으나 [[부산광역시청]] 소속으로 활동하던 1998년, [[오토바이]] 사고로 현역에서 물러난다. 은퇴 후로는 '최무배 짐'이라는 레슬링 도장을 열고 후학 양성과 레슬링 보급에 힘썼다. 2004년 [[종합격투기]]에도 발을 디뎌서 한국 최초로 [[Pride]]에 진출했다. [[http://www.carlife.net/bbs/board.php?bo_table=information&wr_id=1096&sca=%C7%C7%C7%C3&page=25|인터뷰]]에 의하면 종합 격투기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2003년 말 있었던 PRIDE 2003 그랑프리 파이널 라운드를 보러 갔을 때, 관객 추첨 행사로 우연히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힘을 겨루게 되었다가 당연 엘리트 레슬링 선출인만큼, 효도르가 긴장할 정도의 클린치 싸움을 보여준 것이 계기라고 한다[* 정확히는, 동행했던 가이드가 당첨이 됐는데,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추첨권을 바꿔서 본인이 올라갔고, 이벤트인 만큼 가볍게 하는 효도르의 기술을 그냥 버텼다고한다. 그 과정에서 관계자들의 눈에 들었다고.]. 2004년 2월 PRIDE의 하위리그격인 부시도(武社道)[* 시작은 UFC 파이트나이트와 같이 하위리그와 같이 운영됐으나 이후 라이트급 웰터급 등 낮은 체급 선수들의 대회로 변모. 간판 고미 타카노리를 필두로 애매한 마이너리그 이미지를 벗어나 흥행에 성공.] 대회에서 가진 데뷔전에서 이마무라 유스케를 리얼네이키드 초크로 꺾었다. 도중 앵클락을 내줄 위기가 있었으나 잘 넘겼고, 압도적인 피지컬의 우세를 잘 살려 그라운드에서 우세를 이어갔다. 결국 백마운트에서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완승을 거둔다. 2004년 5월에는 야마모토 요시히사에게 심판 만장일치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2004년 6월 Gladiator에서는 러시아의 무라드 아마예프를 상대로 호쾌한 [[저먼 수플렉스]]를 선보인 끝에 파운딩으로 18초만에 초살승을 거두었다. 2004년 10월에는 PRIDE 28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레슬러인 [[소아 파렐레이]]에게 기적같은 역전승을 거둔다. 레슬링 베이스인 파렐레이는 최무배를 상대로 클린치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오히려 우월한 펀치 테크닉으로 수십발의 정타를 맞추었다. 그러나 최무배는 끝까지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체력이 빠진 파렐레이를 테이크다운시켜 리얼네이키드 초크로 탭을 받아냈다. 다만 이 경기는 해외에서 워크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4년 12월에는 PRIDE 2004 남제에 출전, [[자이언트 실바]]와 대결했다. 힘으로는 상대가 안될 거구의 실바였으나, 침착하게 그라운드로 끌고가 암트라이앵글로 가볍게 승리했다. 사실 자이언트 실바는 덩치만 클 뿐, [[떡밥]]스런 상대였지만, 220cm의 괴물을 한국인 파이터가 잡아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국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로서 성공적으로 PRIDE에 안착함과 동시에 한국의 중량급 에이스로 떠오르게 된다. 2005년 2월 PRIDE 29에서는 드디어 탑 컨텐더인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와의 일전을 가졌다. 하지만 넘사벽의 타격능력을 가진 하리토노프는 아웃파이팅으로 최무배의 공격을 모두 피하고 수많은 펀치를 꽂아 넣는다. 이때 답답해진 최무배가 하리토노프에게 싸대기 공격을 날리지만 하리토노프는 그것마저 피해버리고 훗날 이 공격으로 최무배는 '부산싸대기'란 오명을 얻는다. 결국 최무배는 클린치 상태의 더티복싱에서 라이트 어퍼를 허용한다. 이어지는 펀치러쉬에 다운되며 사커킥에 의한 레프리 스톱으로 TKO패하고 말았다. 2005년 11월 K-1 HERO's에서는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케이]][* 최홍만과 혈전을 벌였으며, 이후 WWE에 진출하기도 했던 그 선수 맞다.]에게 장기인 레슬링에서 밀리며 판정패했다. 2006년 12월에는 Pancrase에서 [[고노 마사유키]]로 바닥을 걸레질한 끝에 2라운드에 암트라이앵글로 관광승을 거두었다. 잠시 공백기를 가진 후 2008년 3월에는 한국에서 열린 K-1 칸 대회에서 [[개리 굿리지]]를 레슬링으로 압도한 끝에 크로스 카운터 펀치로 생애 첫 KO승을 거두게 된다. 2008년 6월에는 센고쿠에 출격했으나 ADCC 우승자인 [[마르시오 크루즈]]를 만나 스탠딩과 그라운드에서 압도당하며 패했다. 2009년 1월에는 EXC 출신의 강력한 타격가인 [[데이브 허먼]]과 경기를 가졌다. 무패의 신인 스트라이커를 상대로 관광을 당하면서도 전진을 거듭하자 허먼의 리듬이 깨졌고, 1라운드 막판 저먼 수플렉스를 적중시키며 기무라를 걸기도 했다. 결국 2라운드 경 데미지가 누적된 허먼에게 러쉬를 가하면서 라이트 한방을 허먼의 턱에 명중시켜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2009년 6월에는 후지 카츠히사를 제물로 승수를 추가했다. 2009년 8월에는 센고쿠에서 레슬러인 [[나카오 요시히로]][* [[히스 헤링]]과 입맞춤으로 유명한 선수다.]와 팽팽한 접전을 펼쳤으나 3라운드에 급격히 무너지며 아쉽게 판정패하고 말았다. 이 후로는 [[종합격투기|MMA]]팀 팀태클을 새워 후진을 양성했으며 [[http://www.mfight.co.kr/news/news_view.php?bcode=1&lcode=1&mcode=&scode=&number=13724|충청대학교 교수 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에는 레볼루션이라는 한국 신생 단체와 계약을 맺었지만 [[http://www.mfight.co.kr/news/news_view.php?bcode=1&lcode=1&mcode=1&scode=23&number=24595|대회를 치루기도 전에 공중분해 되어]] 출전 기회를 또 다시 놓치게 되었으나 [[http://www.mfight.co.kr/news/news_view.php?bcode=1&lcode=1&mcode=1&scode=23&number=25354|다시 대회가 개최되어]] 3월 23일 있을 1회 대회에 '''3년 7개월'''만의 복귀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복귀전에서 일본의 몬마 토요히코를 상대로 난타전을 벌이며 1라운드 26초만에 KO승을 거뒀다. 2015년 5월 2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Road FC]] 023에서 루카스 타니를 파운딩으로 1R 1:45 TKO 시켰다. 루카스 타니는 최무배와의 대결 이전에 [[심건오]] 선수를 서브미션으로 잡아낸 바 있어서 레슬링 후배의 복수를 선배가 한다는 구도가 잡혔다. 최무배 선수의 체중이 헤비급 한계체중인 120kg인데 반해, 루카스 타니의 체중은 100kg 남짓으로 이른바 '피지컬 빨'로 승리했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받기도 했다.[* 그 피지컬 빨로도 져버린 심건오 의문의 1패 추가] 등장음악은 넥스트의 Into the arena. 대한민국으로 유명한 그 곡 맞다. 최무배가 과거 [[Pride]]에서 활동할 때부터 써오던 등장음악. 2015년 7월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열린 ROAD FC 024에서 카와구치 유스케에게 2R 4:50에 TKO로 승리했다. 이 경기 전 승패와 관계없이 부산던지기를 시전하겠다고 예고했고, 실제로 부산던지기를 성공시켰으며 경기내용 자체도 압도적이었다.[* 너무나 심하게 압도당했기에 이 경기를 본 국내 팬들에게는 약체 이미지가 박혀버렸지만 카와구치 유스케는 일본 3대 종합격투기 단체 중 하나인 Deep에서 무제한급 챔피언으로서 3차방어까지 성공하고 스스로 타이틀을 반납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아시아권 중량급에서는 나름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다. 물론 카와구치가 전성기를 지났다는 의견도 있지만 최무배의 클래스를 인증한 경기였다.] 2015년 10월 9일 ROAD FC 025에서 코리안 킬러 [[마이티 모]]에게 37초 만에 KO패를 당했다. 2015년 12월 26일 ROAD FC 027 in China 에서 역시 [[마이티 모]]에게 3분 48초만에 TKO패를 당했다. 초반 탐색전을 벌이려는 최무배와 반대로 강한 압박을 하며 들어오는 마이티 모의 펀치 세례를 이기지 못했다. 리벤지 매치에서마저 패배를 당했으니 앞으로 마이티 모와의 경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내몽골 중국인 마안딩을 상대로 승리했다. 초반에 뎀프시롤을 하며 들어오려 했으나 마안딩의 원투 펀치에 고꾸라져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파렐라이와 하리토노프, 마이티 모의 펀치 찜질로 다져진 안면 맷집으로 견뎌내며 라이트 단발 카운터를 적중시키고, 이 한 방에 승기가 최무배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무차별 파운딩으로 KO승을 거두고, 같은 날 제이슨 모튼에게 남북 초크로 완봉승을 거둔 [[후지타 카즈유키]]에게 도전을 받는다. 결국 11월 3일 Road 050에서 후지타와 대결하는데, 뎀프시롤과 풍신 웨이브를 섞은 듯한 뎀풍신롤을 선보이며 화제가 되었다. [[파일:뎀풍신롤.gif]] 그러나 그다지 실효성은 거두지 못하였고 마이티 모나 하리토노프에게 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스탠딩 타격에서 크게 밀려 초반부터 불리한 양상으로 흘렀으며, TD가 막히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다가 후지타의 뒷손 페이크에 걸리며 왼손 훅에 맞고 다운된다. 이후 파운딩 해머링 난타로 인한 레프리 스탑 패배. 2022년 4월 29일 [[엔젤스파이팅]]에서 손혜석[* 주로 미들급에서 뛰던 선수였으나 이날은 체중을 불려 헤비급으로 출전했다.]과 헤비급 타이틀전을 펼친다고 하였다. 그리고 손혜석을 2라운드에 KO시키면서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승리 소감에서는 데뷔 당시 모든 관심을 받고 지금은 일을 안하는 친구를 불러서 일을 시키고 싶다면서 '''[[최홍만]]'''을 콜했다. 다만 이후 개인적으로 최홍만과 만나 대화를 해봤는데 최홍만은 이제 격투기에 많이 멀어진 상태였다고 하며 최무배 또한 마음이 없다면 최홍만과 굳이 경기를 가지진 않겠다고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