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린 (문단 편집) == 기타 ==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에게 진찰을 받은 적이 있다. 1898년의 일로, 이제마가 죽기 1년 전이고 당시 최린의 나이는 21살이었다. 최린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제마는 붓으로 문장을 쓰게 하고 장작을 여러번 나르게 한 뒤 소음인으로 진단하여 향부자팔물탕을 처방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아 1903년 친구와 함께 한의학과 사상의학을 공부하게 된다. [[https://www.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40475|출처]] * [[화가]] [[나혜석]]과 바람을 핀 장본인으로 결국 나혜석은 [[이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당시 나혜석만 비난 받았고 그는 이에 관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나혜석은 한국 여성 최초의 [[세계]] 일주를 한 사람으로 당시 [[변호사]]이자 일본 [[외무성]] 관료로 일했던 [[남편]] 김우영을 따라 2년 여에 걸쳐 [[만주]], [[러시아]], [[유럽]], [[미국]], [[하와이]] 등을 [[여행]]했다. 나혜석의 [[파리(프랑스)|파리]] 체류 중 당시 천교도로 활동 중이던 최린을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당시 [[한국인]] 유학생 사회가 좁은 바람에 파리 한인 사회에서 나혜석은 최린의 작은댁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잠시 [[베를린]]에 가서 공부하던 김우영은 소문을 듣고 몰래 파리에 돌아와 둘의 [[불륜]]을 목격한다. 이후 귀국하여 둘은 이혼한다. 이혼 후 [[솔로]]가 된 나혜석을 최린은 그녀를 버리는데 나혜석은 최린 때문에 이혼당했는데 나 몰라라 하니 최린을 '정조 유린죄'로 당시 돈 12,000원의 손해배상([[위자료]])과 함께 [[고소(법률)|고소]]한다. 최린은 이것에 대한 [[신문]] 기사를 막으려고 [[동아일보]] 기자를 매수하고 나혜석에게 2,000원의 합의금을 주면서 소 취하를 종용한다. 결국 나혜석은 패소한다.] * 3.1 운동 이전에 일본 [[경찰]]로 일하던 신철이란 사람을 찾아가 설득시켰다고 한다. 돈을 건네고 회유하려 했는데 신철은 오히려 스스로 마음을 돌려 3.1 운동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려 일본 경찰들을 엉뚱한 곳에 배치하게 만들었고 3.1 운동 이후에 구속되자 유치장에서 숨겨둔 [[청산가리]]([[시안화칼륨]])를 먹고 [[자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