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능진 (문단 편집) === 유족 === 그의 부인인 이풍옥 여사는 43세에 과부가 되어 '빨갱이 가족' 소리를 들으며 5남매를 힘겹게 길렀다. 장남 [[최필립(기업인)|최필립]]은 1970년대 초반 남북적십자회담에 참여하고 스웨덴 대사를 지내기도 한 외교관으로 성장한 후, 1974년부터 5년 간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의 의전비서관을 맡았다. 2005년부터 8년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3남 [[최만립]]은 1971년에 이낙반도체(구 대한마이크로전자)를 창업해 기업인 생활을 하며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체육계의 거물이 되었다. 최능진의 손자이자 최필립의 아들인 최우석은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다. 최우석은 당시 한국을 '언론탄압국'으로 규정하며 일방적으로 족벌사주를 옹호한 IPI(국제언론인연맹)의 정회원이자 결의문 작성위원으로 눈부신 활약을 한 바 있다. 한국에서 평기자 출신으로 IPI 정회원이 된 것은 그가 유일하거니와, IPI 정회원은 주로 언론사 사주나 주필, 편집국장, 보도본부장 등 핵심 간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IPI 정회원이 된 비결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방우영]] 회장을 보좌하기 위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언론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