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경식(1957) (문단 편집) === 1981년 === 1981년에는 상술했듯이, 소속팀에서의 빼어난 활약[* 1981 전국실업축구연맹전(K리그 출범이전 최상위 축구 리그) 전기 리그 우승 및 최우수 선수상 수상]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A팀]]의 부름을 받아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대통령배 국제 축구대회]] 에 참가하는 대표팀 명단에 포함될 예정이였으나, 소속팀의 중요한 경기(한.일 실업 축구 연맹전)를 치루고 차출해주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여 그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A팀]] (비공식) 데뷔 경기는 공교롭게도 그가 처음 국가대표로 데뷔했던 국제대회 '''자카르타시 창립 기념 축구대회'''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 명단 포함은 되었지만, 교체명단으로 이름을 올렸다. [[불가리아]] 선발팀 과의 결승전에서 '''비공식으로 A대표팀 데뷔를 연장전반에 교체 출전으로 데뷔를''' 했는데 '''[[사기캐|1:1의 상황에서 경기의 마지막 of 마지막인 연장 후반 17분, 득점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 대표팀이 2:1로 경기를 이길 수 있는 상황을]] '''을 [[충격과 공포|만들었다...]] '''거듭해서 말하지만 최경식은 '중앙 수비수' 이다...'''이렇게 2:1로 대한민국이 승리하는줄 알았으나 아쉽게도 경기종료 30초를 남기고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게 되어 2:2로 경기가 종료되었고 양팀의 주장[*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장은 다들 익히 알만한 [[조광래]] 였다.]은 승부차기를 가서 승부를 내기보다 공동우승을 하기로 하였고 [* 이 당시에는 두팀 간의 협의를 통한 공동 우승이 자주 있었다.] '''최경식은 자신의 (비공식) A대표팀 데뷔전에서 연장 후반 마지막에 역전골을 넣은것으로도 모자라 우승을 했다.''' 이 대회 후, 1981년 말에 열렸던 [[메르데카컵]] 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은 [[박성화]]와 [[최경식]]이 맡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