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한전쟁 (문단 편집) === [[토사구팽]] === 항우가 봉건한 왕들 가운데 회남왕 영포, 형산왕 오예, 연왕 장도는 유방에게 투항했다. 초한 전쟁 과정에서 유방은 유력한 군벌들을 왕으로 봉건하였는데, 초왕 한신, 양왕 팽월, 조왕 장이, 한왕 한신 등이었다. 이렇게 천하에는 유방을 포함하여 8명의 왕이 있게 되었는데, 고제 5년(기원전 202년)에 다른 7명의 왕이 유방에게 [[황제]]의 존호를 바치는 형식으로 유방의 우위를 인정하게 된다. 굵은 글씨가 유방에게 황제의 존호를 바쳤던 7왕이다. * '''초왕(楚王) [[한신]](韓信)''': 제왕(齊王)에서 바뀌어 봉해졌다. 기원전 201년 회음후로 격하되고, 기원전 196년 [[진희(한나라)|진희의 반란]]에 연루되어 사형에 처해진다. * '''회남왕(淮南王) [[영포]](英布)''': 구강왕(九江王)에서 봉국의 이름이 바뀌었다. 한신, 팽월이 차례차례 숙청되자 기원전 195년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당해 사망한다. 그러나 유방 또한 영포 진압전 때의 부상으로 그해 사망한다. * '''양왕(梁王) [[팽월]](彭越)''': 기원전 196년 진희의 반란에 연루되어 사형에 처해진다.[* 정확히는 진희의 반란에 연루되었다기보다는 그 때 팽월에게 군사를 이끌고 나오라는 황명을 씹었다. 거기다 팽월의 미움을 샀던 아랫사람이 죽기 싫어서 선수를 쳐 팽월을 음해하는 바람에 잡혀가게 되었고 이후 여후가 다시 고제에게 팽월을 참소해서 처형되었던 것. 물론 갑자기 벌어진 건 아니고 팽월이 이전에도 몇 번이나 황명을 씹었다는 말이 있었던 만큼 유방으로서도 꽤 벼르고 있던 참에 팽월이 제버릇 못 고치고 눈치없이 군 게 문제가 되었다.] * '''한왕(韓王) [[한신(한왕)|한신]](韓信)''': 유방이 처음으로 봉한 제후왕. 원래 전국시대의 옛 한나라 땅에 세워졌으나, 태원을 한국으로 개칭한 다음 옮겨 봉해졌다. 영내로 침입한 흉노와 화친을 시도하였으나 이것이 한 제국의 의심을 사게 되자 오히려 흉노로 투항하게 된다. 한나라를 공격하다가 회음후 한신과 똑같은 196년에 전사한다. 다만 한나라 왕족 단위로 보면 다른 토사구팽 당한 공신들보다는 결말이 좋은데 이 사람의 후손들이 다시 한나라로 귀순한 후 한나라의 명문 귀족이 되었기 때문 * '''조왕(趙王) [[장오]](張敖)''': 초한 쟁패기 중에 왕위 계승을 받은 드문 사례로[* 다른 하나는 서초 측의 2대 임강왕 공위.] 2대 조왕. 조경왕 [[장이]]의 아들이며 유방의 딸 노원공주(魯元公主)와 결혼하여 유방의 사위가 된다. 기원전 200년 유방이 흉노에게 참패하고 돌아올 때, 식객 관고(貫高)가 유방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민 것에 연루되어 선평후(宣平侯)로 강등당한다. 딸 장언(張嫣)은 [[혜제]]의 황후가 되었고, 아들 장언(張偃)은 여태후 시기에 노왕(魯王)에 봉해졌으나 여씨 일족이 몰락한 뒤 열후로 강등되었다. 여담으로 장오는 이 때 유방에게 자신의 측실인 조미인(趙美人)을 바쳤는데, 조미인은 유방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유방은 경포를 제압한 뒤 조미인에게서 얻은 아들 유장(劉長)을 회남왕으로 봉한다. * '''연왕(燕王) [[장도(연왕)|장도]](臧荼)''': 기원전 202년 유방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유방이 친정하여 정벌당한다. 그 아들 장연(臧衍)은 [[흉노]]로 도주했다. 유방은 친구 노관을 연왕에 봉했다. * 연왕(燕王) [[노관]](盧綰): 기원전 202년 장도를 대신하여 연왕에 봉해진다. 기원전 195년 흉노와 손잡은 것이 발각돼 흉노로 망명한다. * '''장사문왕(長沙文王) [[오예]](吳芮)''': 형산왕(衡山王)에서 바뀌어 봉해진다.[* 유방을 옹립할 당시에는 항우에게 형산왕의 자리를 빼앗겼다.] 민월을 평정하러 가다가 병사한다. 아들인 오신(吳臣)이 장사왕의 지위를 이었고, 반란을 일으켰다 패배한 영포를 속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 장사국은 이성 제후국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존속하여 오예의 후손이 봉해졌는데, 기원전 157년 오차(吳差)가 자손이 없어서 죽을 때까지 존속한다. 여담으로 오예의 무덤은 나중에 [[손권]]에게 도굴된다(...). 이로서 한 제국이 성립하게 되지만, 이런 제후왕들은 하나하나 토사구팽당하고, 유방은 제거한 제후 대신 [[동성 제후국|친척인 유씨로 제후를 교체한다.]] * 초원왕(楚元王) 유교(劉交): 유방의 동생으로 형제 중 막내. 기원전 201년 초왕 한신이 회음후로 격하되면서 초나라 서쪽을 받고 초왕이 됐다. * 형왕(荊王) 유고(劉賈): 유방의 사촌 형. 기원전 201년 초왕 한신이 회음후로 격하되면서 초나라 동쪽을 받고 형왕이 됐다. * 오왕(吳王) [[유비(전한)|유비]](劉濞): 유방의 조카로 아래 나오는 대경왕의 아들. 기원전 195년 형왕 유고가 영포에게 살해당해 옛 형나라 땅을 받고 오왕이 됐다. 후에 이 사람은 [[오초7국의 난]]의 주동자가 된다. * 대경왕(代頃王) 유희(劉喜): 유방의 작은형. 별명은 유중(劉仲). 다른 동성 제후왕과 달리 이성 제후왕을 대신해서 봉해진 것이 아니고, 기원전 201년 한왕 한신과 함께 흉노 방비를 위해 봉해졌다. * 제도혜왕(齊悼惠王) [[유비(전한)|유비]](劉肥): 유방의 서장자. 기원전 201년 한신의 옛 제나라에 봉해졌다. * 조은왕(趙隱王) 유여의(劉如意): 유방의 서자. 처음에는 흉노의 침입을 받고 달아난 큰아버지 대경왕 대신 대나라에 봉해졌다, 기원전 198년 유방 암살에 연루된 조왕 장오 대신 조나라에 봉해졌다. * 대왕(代王) 유항(劉恒): 유방의 서자. 기원전 196년 진희의 난이 평정되면서 대나라에 봉해졌고 한신의 한나라까지 아울러 받았다. 후의 [[한문제]]. * 양왕(梁王) 유회(劉灰): 유방의 서자. 기원전 196년 죽은 팽월 대신 양나라에 봉해졌다. 시호는 공(共)이고, 조나라로 옮겨졌기에 조공왕(趙共王)이다. * 회양왕(淮陽王) 유우(劉友): 유방의 서자. 팽월이 죽으면서 회양군을 받아 회양왕이 됐다. 시호는 유(幽)이고, 조나라로 옮겨졌기에 조유왕(趙幽王)이다. * 연영왕(燕靈王) 유건(劉建): 유방의 서자. 기원전 195년 흉노로 달아난 노관 대신 연나라에 봉해졌다. * 회남여왕(淮南厲王) 유장(劉長): 유방의 서자. 기원전 195년 죽은 영포 대신 회남국에 봉해졌다. 한고조가 죽을 때까지 남았던 유씨가 아닌 제후왕은 인구도 적고 민월, 남월에서 완충지 역할을 하던 장사국의 오예(吳芮)뿐이다. 한편 한나라에 형식적으로 복속된, 한족이 아닌 월족(越族)이 세운 이민족 왕조도 있다. 물론 이 왕조는 유씨가 아니다. * 민월왕(閩越王) 무제(無諸): 지금의 푸젠성. 월족(越族)의 왕으로 항우가 왕으로 봉해주지 않아 유방을 지원했기 때문에 왕으로 봉해졌다. 자손은 동해왕(東海王), 동월왕(東越王) 등으로도 봉해졌다. * 남월왕(南越王) [[조타(남월)|조타]](趙佗): 지금의 광둥성과 [[베트남]] 북부 지역. 조타는 본래 진나라의 장수였으나 남월족과 동화되어 남월왕을 자칭하였다. 베트남의 왕조로 여겨진다. 진나라 장수였음에도 베트남에 머물러 있던 덕에 위에서 온갖 난장판이 펼쳐질때도 별일없이 있었다. 혹자는 초한전쟁기에 가장 편하게 누릴것 다 누리고 간 사람이라는 평을 하기도 한다. 그외에도 중원땅에서 왕으로 임명된 이성왕 공신이 한명 더 있었으나 이 공신은 유방에게 왕으로 임명되기 무섭게 왕위를 포기하고 유방과 여후 사이에 난 노원공주에게 하사받은 영토를 바쳐서 토사구팽을 피하고 고향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