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한전쟁 (문단 편집) === 항우의 최후 === 항우는 한과의 전투에서 언제나 승승장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안대학살]] 등으로 민심을 잃는 등 정치에 있어서는 무지렁이에 가까운 처신을 보였다. 또한 인재 기용에 있어서는 적들이 입을 모아 비웃을 만큼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항우의 부하들이 숱하게 이탈하여 유방 밑에서 항우에게 칼을 겨누게 되었다. 그렇게 [[소하]]의 필사적인 보급과 [[팽월]]의 유격전으로 악착같이 버티는 한나라에게 결정타를 날리지 못한 채로 실속 없는 승리만 쌓아가는 도중, '''별동대로 출발한 [[한신]]이 북방을 모조리 평정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광무 대치|광무산 대치]]에 이르러 초군의 군량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적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해지며 [[사면초가|천하에 항우의 적만이 남게 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더는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 항우는 유방 못지않은 원수지간이었던 제나라와 동맹을 맺거나, 한신을 회유하려 해보거나 유방과 화평하려 하는 등 뒤늦게 외교적 수단을 시도해 보았으나 전부 실패하고, [[해하 전투]]에서 연합군에 패배한 뒤 [[사면초가|한군이 초나라 노래를 부르는 심리전]]을 펴자 그나마 남아 있던 군사들도 동요를 일으키고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그 결과 [[해하 전투]] 직전까지만 해도 10만이 넘었던 병사는 불과 800명만 남게 되었다. 항우는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도망가는 신세가 된다. 휘하의 소수병력조차 추격대에 의해 죽어가면서 회수를 건널 즈음에는 100명으로, 중간에 일부러 길을 잘못 가르쳐준 노인으로 인해 늪지대에 빠지면서 다시 28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은 동성 언덕에서 네 갈래로 갈라져서 죽을 힘을 다해 오강 나루에 도착하지만, 항우는 고향에 돌아갈 면목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강동에서 군세를 일으켜 재기하자는 권유를 물리치고[* 사실 개인적인 감정을 자처하더라도 이 당시의 강동은 개발이 진행되기는 했어도 중원의 생산력에는 영 미치지 못했던지라 정신차리고 [[권토중래]]를 하기가 까다로웠다.] 배를 타지 않는 대신 뱃사공에게 오추마를 선물했다. 그때까지 따라온 사람들도 배를 타지 않고 말에서 내린 뒤 그대로 항우와 함께 한군의 추격대를 향해 돌격했다. 항우는 싸움 끝에 자살하였다. 항우의 패배와 죽음은 한나라가 새로운 중원의 패자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얄궂게도 초나라가 항복하는 와중에 한때 항우의 봉토였을 뿐인 노나라만이 끝까지 유방에게 저항했으나, 항우의 수급을 보여주며 항우를 노왕으로서 안장할 것을 약속하자 결국 항복하였고 중원은 한 제국으로 통일된다. 마침내 긴 싸움을 끝낸 유방은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쳤는지 항우의 장례식에서 울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