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한전쟁 (문단 편집) == 특징 == 당대 중국의 모든 세력이 얽혀들어간 대전 중의 대전이며, 진나라 멸망 후 당대 최강자였던 항우는 여러 차례의 괴물 같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패배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유방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평민 출신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사상 초유의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워낙 항우와 유방의 존재감이 막대하여 그 두 명이 중국 땅을 갈라놓고 붙은 문자 그대로 2파전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는 항우와 유방 외에도 여러 왕들과 독자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나 조나라나 제나라, 그리고 후반부에 반(半) 독립세력으로 성장한 한신 등은 충분히 삼파전 구도를 시도해 볼 만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군소 세력들도 모두 항우의 세력권에 속했거나 유방과의 협력관계에 놓여 있었으므로, 양대 세력의 결전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중국 역사상 분열기가 많긴 하지만 이렇게 완전하게 양대로 나뉘었던 전쟁사례가 상당히 특이하면서도 납득되는 이유다.[* 다른 예를 찾자면 [[남북조시대]]와 [[국공내전]]이 있다. 실제로 [[마오쩌둥]]이나 [[장제스]]를 유방이나 항우에 비유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국공 내전도 [[만주국]]을 비롯한 [[일본 제국|일제]]의 존재가 중국사 다른 시대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삼파전의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항우와 유방은 출신 계급부터 정책에 대한 관점, 특징되는 능력과 성격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상반되는 상대였다.[* [[시황제|진시황]]의 행렬을 보았을 때 태도 차이가 이를 보여준다. 유방은 ''' "대장부라면 실로 저래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호탕한 한탄(?)을 했다면 항우의 반응은 '''"저 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겠다"'''였다.] 이러한 상호간의 강렬한 개성으로 인해 이 전쟁은 인기가 많고, 《[[삼국지연의]]》와 마찬가지로 이를 배경으로 한 소설《[[초한지]]》가 있다. 또한 이러한 항우와 유방의 강렬한 개성, 그리고 [[한삼걸]](漢三傑) 등의 존재로 인해 전근대 중국사의 전쟁 중 수많은 사람들에게 [[삼국시대(중국)|중국의 《삼국지》 시대]] 다음으로 많이 회자되고, 미디어화되는 대결이기도 하다.[* 보통 세번째는 [[전국시대]] 말 [[진시황]]의 [[진(영성)/통일 과정|통일전쟁]], 네번째는 [[칭기즈칸]]의 중국 정복전쟁]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의 [[장기]]는 초한전쟁이 배경이다.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에 나타나는 이야기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제 많이들 알고 있는 데 비하여, 실제 기록상에 나타나는 초한전쟁과 [[소설]]인 《[[초한지]]》의 내용에 대한 차이점은 모르는 경우가 잦다. 본 항목에서 다루는 내용은 실제 역사 기록상에서 나타나는 초한전쟁에 관한 내용이다. 소설상의 내용은 《[[초한지]]》 항목을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