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카이(중순양함) (문단 편집) === 제8함대 기함 === 남방작전 이후 일본으로 귀환한 초카이는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지만 미군과 직접 교전을 벌이지는 않았으며, 1942년 7월에 [[http://en.wikipedia.org/wiki/8th_Fleet_(Imperial_Japanese_Navy)|제8함대]]의 기함이 된다. 함대 지휘관 미카와 군이치 제독과 함께 라바울로 이동한 초카이였지만, 제8함대의 사령부 시설은 다른 부대에 비해 상당히 초라했다고 한다. 과달카날에 미군이 상륙함으로서 [[과달카날 전역]]이 시작되었고, 미카와 제독은 기함 초카이와 제6전대([[아오바(중순양함)|아오바]], [[키누가사]], [[후루타카]], [[카코]])를 거느리고 야습을 감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오합지졸 3인방이 떼를 써서 작전에 참가했고, 이들은 미카와 제독의 작전구상에 지대한 방해가 된다. 문제의 군함은 구축함 유나기, [[경순양함 유바리|유바리]], 그리고 잉여 경순양함 [[텐류]]였다. 무선통신도 안 되고 속도도 안 맞는 군함들이라, 일본어 위키에서도 대놓고 오합지졸들이라고 비하할 지경이었다. 과달카날에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를 포함한 강력한 미 함대가 있음을 감안하면 이 작전은 매우 위험했지만, 제8함대는 압승을 거뒀다. 이 해전이 바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해전'''으로 불리는 [[사보섬 해전]]이며, 초카이는 함대의 기함이면서도 선봉에 서서 돌격, 34명의 전사자를 내고 포탑과 함교에 손상을 입으면서도 대승리를 거두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날이 밝기 전에 과달카날의 미군을 공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카와 제독은 함대를 철수시켰다. 일본군이 입은 손실은 귀로에서 미군 잠수함의 매복공격을 당해 격침된 제6전대 소속 중순양함 카코 1척 뿐이다. 포탑 수리를 끝낸 초카이는 제6전대를 거느리고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 제2수뢰전대와 함께 과달카날에 상륙할 일본군 병력을 실은 수송선들을 호위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주력을 이룬 항공모함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수송함대를 놔두고 후퇴하는 바람에 미군의 공습을 당했고, 휘하인 제6전대 중순양함들과 경순양함 유라와 함께 정찰기로 핸더슨 비행장을 야간공습까지 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과달카날 상륙에는 실패했다.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제6전대가 큰 피해를 입은 후, 초카이는 [[키누가사]]와 함께 핸더슨 비행장을 야간에 포격하여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그러나 [[과달카날 해전]]에서 핸더슨 비행장을 재차 포격했다가, 귀로에서 핸더슨 비행장의 칵터스 항공대와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 항공대의 공습을 당해 키누가사를 잃는다. 이것으로 제6전대는 아오바 1척을 제외하면 모두 침몰했으며, 일본군은 과달카날에서 패배했다. 과달카날 전투가 끝난 후 초카이는 제8함대 기함 임무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돌아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