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인지(드라마) (문단 편집) === 정우당 계열 인물 === 일본정우당의 모델은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이다. 작중 역대 최저 지지율의 여당으로 표현되는데 실제로 이 드라마 방영 당시 자민당의 지지율은 아베 - 후쿠다로 이어지는 세습 총리의 자격 미달과 고인물화 강화로 지지율이 낮았고 이후 [[아소 다로]]가 쐐기를 박으며 결국 정권을 넘겨준다. * 우카이 타케히코([[이토 시로]]) : 77세. 역대 최저 지지율의 내각총리대신. 여종업원 성희롱 및 불성실한 언론 대응 등으로 실각하여 국회에서도 사임하라는 권유를 받는 등 정우당 내 총재 선거의 빌미를 마련하는 인물. * 칸바야시 쇼이치([[테라오 아키라]]) : 59세, 중의원 의원 12선, 정우당 총무회장.[* 당 총재, 간사장에 이어 정무조사회장과 동급의 요직으로 당 최고의결기관인 총무회의 수장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건의 흑막. 다만 총리직에 대한 야심이 충만하여 노회한 방식으로 총리와 대항했으나 충직한 측근을 제외하고 아군이 남지 않게 된다. 59세의 나이에 12선을 쌓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 드라마 방영 기준 1946~1947년생 정도의 나이에 당시 44회 중의원 재직중이었으면 첫 당선이 1972년에 치러진 33회 중의원 총선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칸바야시는 첫 당선 나이가 만 25세~26세인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다. 실제로 매 총선 최연소 당선자는 26세~30세를 오갔고 특히 부친의 기반을 이은 후보라면 부친이 일찍 죽으면 저정도 나이에 출마해 대를 잇는 경우도 많다. 실제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일찍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26세에 첫 당선 되었고 그 딸 [[오부치 유코]]도 26세에 첫 당선되었다. * 니헤이 사카에([[코야마 시게루]]) : 79세. 정우당 최대[[자유민주당(일본)/파벌|파벌]] 니헤이파 회장 . 선거에 강한 면이 부각되며 승산 있는 선거에만 나서려는 모습을 보인다. 칸바야시와는 숙적 관계이며 당심 및 지역 표심을 굳건히 다져온 듯한 내공을 암시한다. * 카키우치 타츠히코([[오바야시 타케시]]) : 65세. 당내 실력자 중 한 명으로 우카이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맡고 있다. 은퇴를 고려하고 있는지 자신의 출세에만 관심이 없다. * 와타미 다이치로([[야마노 후미히토]]) : 전 관방장관. 일본 정우 당 총재 선거 결과 최하위 득표 수로 3위에 자리해 있었다. 참고로 당시 득표수는 92표. --100표가 안되다니!!-- * 이소카와 히데키([[코다마 겐지]]) : 전 경제산업상. 일본 정우 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만, 케이타에게 패배. 참고로 당시 득표수는 145표를 얻어 2위. --2위로 낙선하다니!!-- * 오노다 아사오([[나카무라 아츠오]][* 실제로 1990년대에 [[참의원(일본)|참의원]] 의원이 되어 정계에서 활동했던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임기 종료 후 배우로 복귀.]) : 67세. 정우당 간사장이자 국토교통상을 지낸 원로급 국회의원. 여당의 간사장이지만 칸바야시에게 밀리는 등 파워는 세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처음에는 케이타의 어리숙한 모습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나중에는 유일하게 케이타를 솔직하게 지지해 주는 인물.[* 참고로 케이타의 부친과는 동시기에 정우당 회계 책임자로써 활동한 것이 밝혀진다.] * 우부카타 츠네오([[이시구로 켄]]) : 38세. 정우당 내 소장 개혁파 국회의원. 케이타와 같이 평범한 증권사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급서한 부친의 뒤를 이어 국회의원이 된 경력이 있다. 케이타의 개혁 행보를 지원해 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