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프전쟁 (문단 편집) == 결과 == 청과 프랑스는 1885년 [[톈진조약]]을 체결한다. 이 전쟁에서 청나라는 은 10억 냥 이상을 지출했고 2억 냥 가량의 빚을 지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조공국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이 사라졌다.[* 조공-책봉 질서는 비록 형식적이긴 했지만 바로 그 형식이 전근대 중화제국에게 있어서 포기할 수 없는 아이덴티티였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드디어 청나라의 세력을 완벽하게 일소하고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확립하여 본격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 식민지화에 착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중화제국-조공국의 관계에서 제국주의 열강이 끼어들어 중국을 압도하고 조공국을 자기 식민지로 빼앗는 구도는 후일 [[청일전쟁]]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쑨원]] 같은 경우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질서에 금이 간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보고, 자신이 청나라 정부 전복에 뜻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 사태는 근본적으로 청나라의 후진적인 체제 때문이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청나라]]의 취약함이 드러나자 [[대영제국|영국]], [[러시아 제국|러시아]],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미국]], [[일본 제국|일본]] 등이 중국과 그 주변의 나라에 대하여 야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특히 조선과 만주가 전략적인 요충지로 청불전쟁 이후 10년 간 열강의 쟁탈목표가 되었다. 이후 열강들에 대해 청나라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위엄은 청불전쟁과 비슷한 전쟁에서 조선을 둘러싸고 일본이랑 치른 복귀전이었던 [[청일전쟁|]]에서 지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야쿱 벡]]의 반란을 근대화군으로 신속하게 제압하거나 프랑스군한테 유의미한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나름 그럴싸해 보였던 청나라는 비백인 열강한테 지자 최소한의 경쟁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또한 기껏 세운 조선소 등 공장지대가 프랑스 함대의 포격으로 파괴되며 산업화에 큰 지장을 겪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