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프전쟁 (문단 편집) === 프랑스의 기습 공격 === [[파일:복건.jpg]] 그런데 '''[[통수|프랑스는 간명 조약에 조인하고 난 뒤, 바로 청군을 공격했다.]]''' 청군이 국경선까지 철수한다는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 명분이었는데, 간명 조약에는 맹점이 있었다. 조약에서는 분명히 청군의 철수를 약속했지만 언제까지 철수할 것이라는 내용이 없었다. 만일 조약 내용에 청군이 특정 시한 내에 철수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면 그 전까지는 프랑스가 공격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간명 조약에는 철수 기한이 명시되어있지 않았으니 프랑스가 지금 청군을 공격해놓고 '왜 먼저 청군이 물러나지 않았느냐.'라고 논리를 펼 수 있는 셈이었다. 이에 베이징 주재 프랑스 공사는 전쟁 비용 2억 5,000만 프랑의 배상과 청군의 즉시 철수를 요구했다. 청나라 조정에서는 '1개월 이내에 다 철수시킬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프랑스는 이미 푸저우(福州)의 마미 군항(馬尾 軍港)을 공격했다. 이것이 마미 해전이다. 당시 선정대신을 맡으며 복주에 체류 중이던 하여장(何如璋)은, 나름대로 사태를 더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 발포 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덕분에 프랑스 함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복건함대를 전멸시켰다. 무엇보다 마미 조선소는 무려 은 2,000만냥을 들여 만든 양무파의 기대 그 자체였지만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