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프전쟁 (문단 편집) === 간명 조약 === 12월, 프랑스 의회는 군비 추가와 함께 15,000명의 증원군 파병을 승인했다. 원정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메데 쿠르베 제독은 압도적인 무기와 병력의 우위를 앞세워 손타이, 바쿠닌, 타이구엔, 훈호아 등 여러 도시를 함락하고, 손코이 강 삼각주를 제압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베트남 쪽에서도 별 수 없이 청나라에 손을 내밀었고, 청나라는 이 제안을 받고 군대를 파견했다.[* 당시 베트남과 청나라의 관계는 과거 한반도의 국가와 중화제국이 맺었던 조공 책봉 관계였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에 파병을 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무렵 청나라는 신강에서의 전쟁이 막 끝나기도 했고, 이홍장은 베트남에 힘을 쏟을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는 되도록 빨리 전쟁을 종결시키기를 원했기에 1884년 4월, 프랑스 대표 푸르니에와 함께 [[천진]]에서 만나, 이른바 간명(簡明) 조약을 체결했다. 청은 프랑스의 베트남 보호권을 승인하고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던 청군을 변경으로 철수시키기로 하는 대신, 프랑스는 중국의 변경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