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주대학교 (문단 편집) === 1947-1969 : 개교 === [[일제강점기]]에 학교 설립이 좌절된 [[조치원읍]]을 떠나 육영사업을 펼칠 목적으로 온 [[청주시]]에서 직접 보통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모색했던 김원근이 당시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사설 학원 대성학원[* 1922년 4월 개원한 대성학원은 당시 천도교 청년회 청주지부장인 서창수가 뜻을 같이하던 교육 동지들과 개원한 교육기관이다.]에서 온 인수제의를 흔쾌히 수락하여 [[1924년]] 출범한 [[청주대성초등학교|대성보통학교]]가 청주대학교의 뿌리이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8.15 광복|광복]]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당시 전문학교 이상 교육기관 수가 28개교에 불과했으며, 그 마저도 대부분 [[서울]]에 있는 상황이었기에 전문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충청북도]]에서 지역 인재들은 학업을 포기하거나 학업을 위해 이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했던 김원근, 김영근[* [[국민의힘]]에서 활동 중인 [[김수민(정치인)|김수민]] 전 의원이 이 사람의 증손녀다.] 형제는 민주 국가를 건설해 갈 인재를 양성한다는 교육입국 정신으로 재산을 정리하여 기성회를 조직하고, 청주상과대학 설립에 착수했다. 이후 [[1946년]] [[8월]] [[미군정|미 군정청]] [[문교부]]에 청주상과대학 설립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미군정|미 군정청]]은 기본재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가를 지연시켰다. 이에 김영근이 당시 [[문교부]] 차관이었던 [[오천석]]을 찾아가 대학 설립목적과 의지를 설명하고 500만원 보증수표를 보태어 마침내 [[1946년]] [[11월 11일]] 정식 인가를 받아 대한민국 광복 후 최초의 신설 4년제 대학인 청주상과대학이 탄생했다. 설립 인가를 받은 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s-6.1.6|수동]]에 교사를 마련하고, 8명의 교수를 임용한 뒤 상학과 신입생 100명을 모집하여 마침내 [[1947년]] [[6월 6일]] 대한민국 광복 후 최초의 신설 4년제 대학 청주상과대학의 문을 활짝 열었다. 설립 당시의 최종성 초대 학장서리와 김순식 학장서리의 뒤를 이어 취임한 초대 학장은 [[진천]] 출신이자 [[성공회]] 사제인 김현대(바우로) 신부이다. 오늘날 청주대학교 청석교육역사관 앞에는 대학의 기틀을 세우는데 힘썼던 김현대 신부를 기리는 송덕비가 조성돼 있다. 이후 [[1950년]] [[5월]]에는 법학부 법학과를 신설하였고, [[1951년]] [[7월 17일]]에는 [[문교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교명을 청주대학으로 변경하였다.[* 교명을 변경한 뒤 [[한국전쟁]]으로 인해 1년 6개월을 미룬 첫 졸업식을 8월에 거행했는데, 입학 당시 108명 가운데 첫 졸업생은 36명이었다.] [[1953년]] [[1월]]에는 상학부 경제학과, 법학부 정치학과가 증설되었으며 [[1954년]]에는 물리학부를 신설하고 문학부와 물리학부를 두었다. 이후 [[1954년]] [[3월]] [[대한민국 교육부|문교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아 석사 과정 대학원을 설립했는데 종합대학이 아닌 단과대학이 대학원 설립 인가를 받은 것은 청주대학이 최초이다. 개교 10주년이 되는 [[1957년]] 대학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내덕동(청주)|내덕동]] 일대에 새로운 캠퍼스 건설을 시작하여 완공과 함께 상학부와 법학부가 이전하여 [[청주대학교/캠퍼스 내 건물 및 시설#s-1|내덕동 캠퍼스]] 시대를 시작했다. 이후 종합대학 승격을 제1과제로 삼고 개교 20주년이 되는 [[1967년]]에 맞춰 준비했으나,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 부정시비가 대학가에 영향을 미쳐 무기한 휴교사태까지 발전하자 [[대한민국 제3공화국|정부]]가 전국적으로 종합대학 승격을 시키지 않기로 하여 계획이 무산되었다.[* 한편 종합대학 승격에는 박물관 설치가 필수라는 [[문교부]] 방침에 따라 1967년 11월 박물관을 개관했으며, 이는 [[충청북도]] 최초의 종합 박물관으로 우리나라 중부 문화권의 특색을 보여주는 유물이 200여점 전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