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일전쟁 (문단 편집) ==== 풍도 해전, 성환 전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풍도해전.jpg|width=100%]]}}} || || 풍도 해전 || 7월 25일 [[황해]] [[아산만]] 부근 [[풍도]](현재 행정구역 상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서 일본 해군이 청 해군을 기습 선제공격한다. 당시 청의 군함 2척(제원, 광을)은 텐진항을 출발하여 아산만으로 이동 중이었고 이 경로를 파악한 일본 군함 3척(요시노, 나니와, 아키츠시마)은 풍도에서 매복해 청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해군의 포격을 받은 광을호는 도망가다 화약고가 폭발하여 좌초되고 제원호만 빠져나간다. 뒤이어 또 다른 군함 1척(조강)과 수송선([[영국]]상선 고승)이 나타나 고승호는 격침되었고 조강호는 나포된다. 여기서 고승호 격침이 국제적 논란을 불렀다. 동학군과 싸우러 조선에 가는 제3국 선박을 공격해 침몰시킨 행위에 [[영국]]을 비롯한 각국이 항의하고 나섰다. 도고 헤이하치로 대좌가 '만국공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 이 사건은 국제 해사 분쟁의 오랜 논쟁거리로 남았다. 고승호에 동승했던 [[독일인]] 교관 콘스탄틴 폰 한네켄은 '고승호 격침 직후 탈출한 청국 수병들을 일본군이 구조하기는커녕 사살했다.'고 증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성환전투.jpg|width=100%]]}}} || || 성환 전투 || 이 풍도 해전을 시작으로 7월 28일에는 [[성환읍|성환]]에서 대기 중인 청군 3,500명을 오시마 요시마사가 이끄는 [[일본 육군]] 4,000명이 공격하여 청군은 500명이 전사하고 평양으로 퇴각하였다. 8월 1일에야 양국은 동시에 [[선전포고]]했으며 곧이어 [[평양]]에서 격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