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사고 (문단 편집) == 편찬과정 ==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수립된 중화민국 정부는 공화제였기 때문에 후임 왕조가 전임 왕조의 사서를 편찬하는 중국의 전통을 이어야 할지 말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이 논란은 원세계가 황제를 참칭하면서 새왕조를 열려고 하면서 과거의 전통을 이어야한다는 결론이 나자 갑자기 해결되었다. [[1914년]] 총통 [[위안스카이]]는 황제를 참칭하였고, 사서 편찬의 전통을 잇기 위해 '청사관'을 설립해 이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청나라의 유신인 자오얼쉰(趙爾巽, 조이손)을 청사관장에 임명하여 《청사》(淸史)를 집필하게 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 사후 중화민국은 곧 혼란에 접어들었고, [[1920년대]] 초에 《청사》의 초고가 완성되었으나 편찬이 중단되었다. [[1926년]] 다시 편찬이 시작되었고, [[1928년]]에 동북 군벌 [[장쭤린]]의 재정 지원으로 출판하려고 했으나, 출판 직전에 자오얼쉰이 사망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이후 청사관에는 내분이 일어났고, 이어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북벌군이 베이징을 점령했는데, 《청사고》에 국민당이 역적(賊)으로 표기되어 있고, 신해혁명 이후의 [[연호]]도 중화민국 연호가 아니라 청나라 연호인 '선통'을 그대로 쓴 것을 알고 출판을 금지하며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당의 검열을 받아 수정된 판본을 '관내본'이라 하고, 이후 국민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에서 출판된 원본을 '관외본'이라고 한다. 이때까지는 초고라는 뜻의 '고'(稿)가 붙어서 《청사고》라고 한다. 본래의 《청사고》는 전권 536권이고, 기전체의 전통을 따라 <본기> 25권, <지> 142권, <표> 53권, <열전> 316권으로 되어 있다. 이후 어느 정도 마이너한 체인지가 있었다.[* 《청사고》의 관외본은 일부 권의 첨삭으로 인해 529권으로 나오기도 한다.] 《청사고》 편찬 시점에서 조선은 이미 멸망해 있었고, 일본 제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외교(外交)<지>(志)에는 <조선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청나라 인접국에 대하여 열전 말미에 속국전(屬國傳)이 4권 배정되어 있는데 속국전 1권에 [[조선]]·[[류큐 왕국|유구]], 속국전 2권에 [[월남]] 등으로 서술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