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러관계 (문단 편집) === 중반 === 18세기 중반 청나라가 [[준가르 칸국]]을 병합하면서 러시아 제국과 청나라는 중앙아시아에서도 국경을 맞대기 시작했다. 1851년에는 신장 지역의 국경 지대의 무역 관련하여 쿨자 조약이 새로 체결되었다. 러시아 제국 상인들이 천산북로에서 불법적으로 무역을 하는 것에 대해 청나라가 제재를 가하자, 러시아 제국 측에서 여기에 항의하였고, 결국 청나라는 쿨자를 러시아 상인들에게 개방하되 [[카슈가르시]]의 개방은 거부하는 방향으로 조약이 체결되었다. 쿨자 조약 체결 문서는 러시아어와 프랑스어 및 만주어로 작성되었으며, 원 조약에는 중국어가 없었으나 후대 와서 조약 내용이 중국어로 다시 번역되었다. 양국의 관계는 약 1백여년 동안 네르친스크 조약과 캬흐타 조약에 의거하여 지속되었으나 청나라가 쇠퇴하고 1858년에 새로 [[아이훈 조약]]이 체결되면서 만주와 연해주에 러시아 제국이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1860년에는 [[베이징 조약]]을 체결해 연해주가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청나라의 영토였던 [[만주]]에도 러시아 제국이 영향을 줬고 러시아인들이 만주 지역에 정착했다. 이후 러시아 제국이 우즈벡 3칸국을 병합하는데 완료하면서 양국이 국경을 접하는 면적도 증가하였다. 청나라는 러시아가 만주에서 세력을 확장하는데 위협을 느끼고 한족들의 만주 이주를 권장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1870년대 [[감숙성]]과 [[섬서성]]에 기근이 들자 해당 지역 인구가 만주 지역으로 대거 이민정착한 것을 계기로 만주의 한족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청나라의 신장 지역이 1864년 [[야쿱 벡]]의 봉기로 혼란한 틈을 타서 1871년 러시아 제국은 카자흐스탄 지역과 인접한 신장 북서부 영토 상당 지역을 병합하였다. 야쿱 벡의 봉기를 진압한 좌종당의 군대가 쿨자에 주둔한 러시아군과 대치하는 가운데 결국 18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통해 청나라는 쿨자를 반환받는 대신 러시아 제국이 새로 병합한 신장 서북부 영토 대부분의 권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계기로 천산북로의 중심지였던 [[쿨자시]]는 러시아 제국과의 국경 도시 기능을 하게 되었다. 이후 청나라 조정은 신장의 중심지를 [[우루무치|디화]]로 이전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