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나라 (문단 편집) == 개요 == [[중국]] 최후의 통일왕조이자 [[정복왕조]].(정확히는 만주족이 세운 그리고 황제가 몽골 칸까지 겸하니 한족 중심의 지금 중국과 또 한족들의 왕조와는 구분 된다) 296년([[1616년]]~[[1912년]])[* 국호가 청나라로 바뀌기 전 후금 시절까지 합한 시간. 순 국호가 청나라였던 1636년을 기준으로 하면 276년이겠지만 애초에 왕조가 바뀐 게 아닌 단순 국호 변경이므로 당연히 후금까지 포함된다.]이라는 근 300년에 달하는 긴 세월 동안 중국 대륙을 통치한 제국이며, 역대 왕조 가운데 황통의 중단없이 가장 오랫동안 존속한 왕조다.[* 참고로 통일 왕조 중에서 가장 오래 존속한 나라는 [[한나라]]고 그 다음이 [[송나라]]다. 다만 한은 [[신나라]]의 건국으로 세조 광무제가 왕조를 복구하기 전까지 15년간 끊겼었고, 송은 [[정강의 변]]으로 황제가 잡혀간 뒤 [[북송]]이 멸망하고 이후 남송이 건국되는 바람에 황통이 한 번 끊겼다. [[당나라]] 역시 황조 존속 기간은 긴 편이지만 중간에 [[측천무후]]가 국호를 [[무주(당나라)|무주]]로 바꾸고 본인이 직접 황제가 되어 황통이 끊긴 적이 있었다. 중국사를 통틀어 봤을때 이민족이 세운 나라가 약 300년이란 장기간 동안 광활한 국토를 지배하며 다스린 것은 가히 특기할 만하다.] 더불어 역대 중국 왕조 중 [[원나라]] 다음으로 가장 넓은 강역을 차지한 왕조로, 전성기 기준으로는 그 원나라보다도 넓다. 또한 중국 왕조에서 드물게 제위의 찬탈이 한 번도 없이, [[천명제]]부터 [[동치제]]까지 10세대에 걸쳐 부자 직계 세습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부자 직계 세습의 법칙을 깨고 방계로 즉위한 황제는 마지막 두 황제인 [[광서제]]와 [[선통제]]밖에 없다. 선통제도 혈통상 그런 거지 호적상으로는 백부 광서제의 양자 자격으로 제위를 받았다. 광서제는 동치제와 같은 항렬이라서 1항렬 1황제의 원칙에 따라 원래는 제위에 오를 수 없었으나 [[서태후]]의 강력한 주장으로 [[함풍제]]의 양자 자격으로 사촌형의 뒤를 이었다.] 또한 단명한 왕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약 400년 동안 29명의 황제[* [[촉한]] 제외]가 재위했던 [[한나라]]나 약 300년 동안 각각 20명과 18명, 16명의 황제가 재위했던 [[당나라]]와 [[송나라]], [[명나라]]에 비해 '''황제 수가 적고 황제 1인 당 평균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다.''' 애초에 단 세 명의 황제가 통치한 [[강건성세]]의 길이만 해도 '''한세기 반'''이나 되었고[* 명나라 또한 40년 이상 통치한 황제가 없진 않았으나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암군 내지 폭군에 불과한 것.''' 현재는 말년의 건륭제가 아버지 및 할아버지와 비교되어 박한 평가를 받으나 그런 건륭제 조차도 [[명나라 F4]]와 비교하면 건륭제에 대한 실례이다.], 황제로서의 재위기간이 불과 10년 밖에 안된 초대 황제 누르하치 조차, [[여진족]]의 [[추장]]으로 추대된 기간부터 세면 무려 '''43년'''을 지도자로 있었다. 만주족은 본래 [[여진족|여진(女眞)]] 또는 여직(女直)이라 불렸다. 그 일부는 12세기에 [[화베이]]로 진출하여 [[금나라|금(金)왕조]]를 세웠으나, 만주에 잔류한 대부분은 점차 정착농업을 영위했다. [[누르하치]]가 여진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1616년]]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금(金)[* 이전 시대의 금과 구별을 위해 주로 후금(後金)이라 부른다. 태종 시기에 국호를 청으로 변경했다.]이라 하고, 흥경에 도읍했다. 이 사람이 청의 태조이다. 또한 [[21세기]] 이전 기준 최후의 퉁구스계 주권국가로, [[만주족]]을 중심으로 [[몽골인]],한족, [[티베트인]], [[위구르인]] 등 다수의 민족들이 연합한 다민족국가였다. [[1636년]] 4월 11일, 후금의 [[홍타이지]]가 국호를 '다이칭 구룬( )'으로 개칭하면서 역사에 등장했다. 이후 1644년에 [[이자성의 난]]과 [[남명]]을 제압하고 중국 베이징에 입관(入關)했으며,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라는 3명의 걸출한 군주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강건성세]](康乾盛世)'라고 불리는 장장 120여 년에 가까운 성세를 누렸다.[* 참고로 청조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전성기를 누린 나라이다. 명나라는 [[영락제]]부터 [[선덕제]]까지 평화로운 전성기가 40여 년을 채 못 갔고, 이후 [[토목의 변]] 등 천재지변과 [[임진왜란]] 그리고 외부로는 몽골과 만주 세력들의 침노를 받으면서 점차 몰락의 길을 걷는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대외원정은 활발했기에 엄밀히 따지면 전쟁이 없는 시대는 아니었다.] [[티베트]], [[신강]], 내외 [[몽골]] 등 광활한 번부를 정복하고 통치했다. [[18세기]] 내내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군림하며 찬란한 중국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뿌리깊은 부정부패와 만한갈등 탓에 [[백련교도의 난]]과 각종 민란들이 터지며 쇠퇴하기 시작했고,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의 이권 침탈이 가속화하며 모든 면에서 망국의 색이 짙어졌다. 1840년에는 [[아편전쟁]]이 발발했고, 이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중국은 노골적인 식민열강들의 이권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이후 [[양무운동]](동치중흥)이나 [[변법자강운동]](광서신정) 등으로 근대화 움직임을 시도하였으나 이미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기는 역부족이었고, 19세기 말에 [[태평천국의 난]], [[의화단 운동]] 등 온갖 시련을 겪다가 결국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나 이듬해 2월 [[선통제]]가 퇴위하면서 공식적으로 멸망했다. 다만 제국은 1912년에 붕괴했음에도 청 황실은 1924년까지 [[자금성]]에 머무르면서 [[청나라 소조정|소조정]]이라는 형태로 존속했다. 또한 1912년에 퇴위했던 선통제가 1917년에 [[장쉰]]이 일으킨 [[장훈복벽]]으로 복위하여 잠시 복고하기도 했으나, 10여일 만에 진압되면서 [[북양정부]]에 다시 귀속되었다. 결국 소조정마저 1924년 [[핍궁사건]]으로 선통제가 자금성에서 쫒겨나면서 청나라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황성(皇姓)은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 아이신교로라고 쓰기도 하며, 현대 [[중국어]]로는 '아이신줴뤄'로 발음된다. 한국 한자음으로는 '애신각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