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첩 (문단 편집) === 과거에 여성이 자신을 낮춰 부르던 일인칭 대명사 === 첩(妾)은 궁중이나 민간에서 여성이 자신을 낮춰 부르던 말이다. 첩(妾)은 원래 여자 [[노비]]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높은 신분의 여성 또한 [[군주]] 앞에서 자기를 첩으로 지칭하며 낮춰불렀다. 첩의 반대말은 남자 노비를 뜻하는 신(臣)이다. 그래서 [[신첩]](臣妾)은 남자 백성과 여성 백성을 합친 신하를 강조하는 백성을 뜻하는 말이었다. [[신민]]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조선왕조실록부터 [[구한말]]의 기록까지 실제적으로 신첩은 이러한 뜻으로 쓰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신첩'을 검색해보면 태조~순종 때까지 일관되게 신민, 신하의 뜻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관들(남자)인 "우리 신첩이~"(저희 백성은, 저희 신민은~)이라며 자칭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왕비나 후궁이 중국 사극에서 군주 이상에게 신첩을 쓰고, 한국 사극에서는 군주에게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극에서 쓰이는 법칙 중 하나일 뿐이다. 신첩은 사극에서 쓰는 것처럼 일상에서 쓰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임금에게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에서 첩, [[소첩]], 첩신(妾身), 신녀(臣女)[* 일반여성이 군주를 대할 때. 성종실록 권제39, 성종 5년 2월 1일(병진), 중종실록 104권, 성종실록 259권, 성종 22년 11월 18일 경인 1번째기사 중종 39년 9월 2일 무술 2번째기사 등.]등이 주로 쓰였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의 기록인 [[동국이상국집]]에서 왕족 여성이 군주 이상(태후, 왕후, 왕)에게 첩으로 자신을 지칭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여성이 임금에게 자신을 신첩(臣妾)이라고 지칭한 것 역시 원문을 보면 왕비는 첩(妾)으로,[* 성종실록 9권, 성종 2년 1월 19일 임진 4번째 기사] 일반 여성은 신녀라고 되어있다. 정실 왕비(왕후)인 [[인현왕후]]도 [[숙종(조선)|숙종]]과 연애 편지로 밀당을 할 때, 자신을 소첩이라고 부르곤 했다. [[무협지]]에서도 종종 이런 표현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쓰는 1인칭인 [[와라와]]를 첩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풍적인 여성의 1인칭이라는 분위기만 놓고 보면 그럴싸 하지만, 저 단어가 자신을 낮춰 부르는 표현이 아니다보니 의미로 놓고 보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와라와가 문자로는 첩과 동일하긴 하다. 그래서 신첩이나 소첩 등 자신을 낮추는 표현을 떼고 그냥 “첩은 ~~” 등으로 번역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류우게 키사키]]의 동인만화를 번역할때 이렇게 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첩, version=11, paragraph=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