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첩 (문단 편집) ==== 기타 ==== 첩에 관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첩을 들이는 것이 합법적이거나 용인되었던 시기에 신분이 높고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남자가 첩을 들이지 않으면 지역사회에서 '''남자의 부인에게''' 그 '책임'을 물어서 "드세다", "투기가 심하다" 등 나쁜 평가를 내렸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조선의 양반집의 경우 '''본부인이 나서서 일부러 첩을 들이는''' 놀라운 경우도 있었다. 조선 왕실에서 왕비가 첩인 후궁을 들이라고 국왕에게 먼저 조언한 사례도 있다.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여색에 관심이 없자 귀족이며 백성이며 할 거 없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탓을 하면서 프랑스의 얼굴인 남편의 기를 죽여서 대외적인 프랑스의 위엄을 깎아내린다고 험담했다. 이런 상황은 여권이 신장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일부다처제와 달리 축첩은 인정하는 동네가 많지 않고, 흔한 오해와 달리 [[이슬람 국가]]에서도 2번째 아내가 아닌 본처보다 낮은 첩을 들이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과거 이슬람권에서는 여자 노예라는 이름으로 [[하렘]]에 사실상의 첩들을 들였지만, 이것도 이슬람권 전체에 보편화된 풍습은 아니고, 오직 [[튀르크]]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풍습이다. 그것도 왕이나 대영주 정도나 할 수 있던 일이었고, 애초에 하렘 제도의 시작은 성적쾌락이 아니라 공평한 경쟁(?)을 통한 유능한 자식의 계승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현대 대부분의 [[순니파]] 이슬람 국가에서 인정하는 것은 최대 4명까지의 '''평등한 정처'''이다. 일부일처다첩제에 익숙한 한국의 시각에서는 둘째 이하 부인들을 곧바로 첩으로 간주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상당한 결례이므로 대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부유층이 아닌 다음에야 생활비가 쪼들려서라도 2명 이상과 혼인하는 경우가 잘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일부다처제]] 문서에 들어가면 알겠지만 이슬람식 일부다처제는 이래저래 피곤하다. 거기다가 어떻게 큰맘먹고 또 들이려고 해도 기존 부인들의 전원 찬성이 필요해서 마음먹는다고 마음먹는대로 구해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슬람 사회에서 다처제를 인정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혼]]을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물론 이혼을 부정적으로 보던 것은 다만 이혼절차는 매우 간편하기 그지 없어서 남편이 이혼하겠어!라고 세번 외치면 자동적으로 이혼이 성립된다. 원래 [[쿠란]]에서 이혼숙려제를 장려했지만, [[샤리아]]가 제정되는 과정에서 이혼절차가 매우 간편화된 것으로 현재 파키스탄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 이런식으로 이혼이 처리된다.] 부인이 배우자로서 만족스럽지 않거나 자식을 낳지 못하더라도 그 부인을 내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쿠란에는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으면 이혼할 수 있다고 적혀있기는 하다. 최근에는 이슬람 사회들도 인식의 변화로 두 번째 아내를 들이는 경우보다는 이혼과 재혼이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젊은 나이일 수록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리는 남성의 비율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일부일처가 완전히 확립될지도 모르는 상황. 물론 대다수 가정에서는 일부일처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일부다처가 점차 줄어드는 이유는 쿠란에 '''모든 아내들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으면 결혼을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으로, 동등하게 대하다 = 모든 아내 및 처가들에 경제적 부담을 똑같이 들여야 한다 = '''경제력이 탄탄해야 한다''' 로 직결되기 때문에 아무리 일부다처가 허용이 되는 아랍권에서도 경제가 그럭저럭인 남자는 아내를 여럿 두기가 어렵다.[* 심지어 정부에서는 이 점을 노리고 아내가 많은 가정에는 [[세금]]을 더 많이 때린다. 아내가 여럿일 정도로 경제력이 강하다면 당연히 [[부자]]이기에 세금을 더 낼 의무가 있다는 논리.] '''천하의 [[셰이크 만수르|만수르]]조차 아내는 소박(?)하게 두 명밖에 안 둔다'''. 심지어 아내가 둘이나 되는 것도 정략결혼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 첩은 남첩(男妾)이라고 한다. 첩([[妾]])이라는 한자가 여성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글자이기 때문에[* 해당 글자의 [[부수]]부터 [[女]](계집 녀)이다.] 남자 첩일 경우 첩 앞에 [[男]](사내 남)을 꼭 붙여줘야 한다. 옛날엔 남성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남첩은 비공식적이었다. 여자가 남첩을 두는 경우는 희귀했다. 당시 사회 관념상 여성이 대놓고 남첩을 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드물게 있는 사례는 권력이 매우 강한 여성인 경우다. 황제로 즉위한 [[측천무후]], 폭군 [[전폐제(유송)|남동생]]의 비호를 받은 [[산음공주]] 등의 사례로, 본인이 사회 통념을 거슬러도 될 만큼 힘이 있거나 혹은 통념에 반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무마시켜 줄만한 뒷배경이 있었으니 남첩을 둘 수 있었던 이들이다. 남자가 [[동성애]]자라 남첩을 두는 경우도 있었다. 고위 인물의 남첩은 [[남총]]이라고 한다. [[캐빨물]] 계열의 웹소설에 인터넷 밈으로 '측실'이 사용된다. [[최애|가장 선호하는 캐릭터]]를 정실이라 하고 그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를 측실이라 지칭하는 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