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황 (문단 편집) ==== 방한(訪韓) 여부 ==== 역사적으로나 현재까지도 [[천황/명단|역대 천황]]들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역대 일본 총리]]나 각료들과는 달리 1907년 [[다이쇼 덴노]]가 황태자 시절 한 번 방문한 것 외에는 공식적으로 한반도를 방문한 기록이나 사례가 없다. 또다른 일제의 [[식민지]]였던 [[대만 섬|대만]]에는 [[쇼와 덴노]]가 방문한 적이 있으며 [[아키히토]]도 1991년과 1992년, 2017년에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의 일본 제국에 의해 피해를 입은 국가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도 겪었고 [[임진왜란]] 등을 통해 [[일본]]에 의해서 군사적으로 침략 받았으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못지 않게 일제 시기의 일본에게 더 큰 피해를 입었던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근방(近邦)임에도 불구하고 수상이나 각료들을 제외하고 천황은 물론 황족 등도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과 [[히사코 비]] 부부가 방한한 것 외에는 따로 방한한 적이 없다. 다만 예전에 개인적으로 방문한 친족들이 있었다. 1970년 [[영친왕]]의 장례식 때나 1989년 [[이방자]] 여사의 장례식 때가 그 예다. 이방자 여사의 장례식 때는 전술한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 [[다이쇼 덴노]]와 [[데이메이 황후]]의 4남 중 막내.]과 [[유리코 비]] 부부가 조문했다. 이는 이방자 여사가 일본 방계 황족 출신이기 때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차남인 [[이구(1931)|이구]]의 장례식 때는 주한일본대사가 조문했고, [[아키히토|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 부부 명의의 조화가 왔다. [[일본 정부]]와 [[궁내청]]에서는 [[1998년]] [[10월 7일]],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시 천황과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처음으로 [[아키히토]] 천황이 [[한반도]]에 대한 '[[고통]]'과 '[[사죄|사과]]' 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언급함으로써 과거의 일본의 모습과 다른 면모를 보였다.[[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2005188_19498.html|아키히토 일본국왕 발언]][[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2005187_19498.html|일본 국왕 김대통령 초청 만찬서 한국 고통 사과]]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천황 방한을 추진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국민들은 물론 호국 및 애국단체와 독립단체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반일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거나 규탄하고 나섰으며 [[한국]] 국민들 대부분도 천황의 방한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결국 한국 정부가 급히 "천황의 방한 계획은 사실상 없다"고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누그러지기도 하였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천황 사과 요구|천황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발언]]을 날렸고 이에 우려하는 말이 나오자 해명하였다. 사실 이명박 이전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도 천황 방한을 추진하거나 추진하려고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과거사 문제해결과 [[반일]] 성향이 짙은 국민정서 그리고 [[반일]] 및 여러 단체들의 반발과 반대, 일본 측의 거부로 인해 모두 실패하였거나 무산된 적이 있다. 게다가 [[노무현]]과 [[박근혜]], [[문재인]]의 경우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대일 외교와 관련해 천황 방한을 아예 언급, 추진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노무현]]은 [[아키히토]] 천황의 한국 방문 대신 아키히토 천황의 장남인 [[나루히토]] 황태자와 차남 [[후미히토]] 친왕의 한국 방문을 제안했을 정도로 천황 방한에 소극적이었고, [[박근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가 터지고 대통령직에서 탄핵 당하기 이전 콘크리트 지지율 30%를 자랑할 정도로 당시 고정 새누리당 지지층들로부터 높은 지지율을 보였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신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로 복무, 부역하는 등 아버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논란과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당시에 [[일본]]도 [[아베 신조]] 총리가 군사대국화 등 우경화 정책을 펼치면서 [[박근혜 정부]] 시기 초반기에 [[한국]]과 외교적으로 대립, 갈등을 빚던 시점이었는지라, 당시 [[박근혜]] 본인이 천황 방한을 추진하고 싶어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문재인]]은 직접 천황 방한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2017년 9월 [[이낙연]] 국무총리가 천황의 한국 방문을 제안하는 발언을 했고, 이수훈 신임 일본대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천황 방한을 거론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임기 중반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배상 판결이 확정되고부터는 [[한일 무역 분쟁]]으로 한일 관계가 광복 이후 사상 최악의 국면까지 치달으면서 천황의 한국 방문은 언급조차 나오지 못했다.] 일본의 상황도 비슷해서, 천황이 한국에 간다는 것은 또 다시 한국에서 천황에게 [[일제강점기]]나 [[일본군 위안부]] 등 한일 간 역사 문제와 관련해 사과를 요구할 수도 있는 등 난처한 입장이 된다는 것이 자명하기에 방한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기된 대로 천황은 정부의 통제를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보다 일본과 더욱 사이가 안 좋은 [[중국]]에도 1992년 [[아키히토]] 천황이 중국을 방문한 것처럼, 언젠가는 한국도 방문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중국조차도 1970~80년대 당시 [[쇼와 덴노]]가 살아있던 시절까지는 천황의 방중이 중국 국내에서도 정치적으로 금기시되었고 1989년 [[쇼와 덴노]]가 사망하고 현 [[아키히토]]가 즉위할 때까지 천황이 중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만일 성사된다면 대한민국에 방한한 국가원수들의 기념행사인 [[무궁화대훈장]], [[훈장(상훈)/일본#s-2.1|대훈위 국화장]] 훈장 교환이 천황에게도 이루어질지도 실로 주목된다. 그러나 2016년 아키히토가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히고 이로 인해 아키히토 천황의 퇴위 작업이 일본에서 진행되면서 큰아들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황위를 양위한 이후 현직 천황 신분이 아닌 '상황 신분으로라도 한국을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견해도 존재하며 차기 천황인 나루히토의 방한 여부 역시 귀추가 주목된다. 2017년 9월 23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천황이 퇴위하기 전 아키히토 천황의 한국 방문을 제안하는 발언을 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9/23/0200000000AKR20170923027000073.HTML?input=1195m|#]] 이수훈 신임 주일대사도 "아키히토 천황의 방한이 [[한일관계]]를 녹이는데 큰 기여를 하는 게 아니겠냐"며 일본 천황의 한국 방문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25/0200000000AKR20171025124500014.HTML?input=1195m|#]]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천황 방한이 이뤄지면 [[한일관계]]에 발전될 것으로 본다"며 천황 방한을 거론하는 발언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3020294|#]] 생전 퇴위가 결정된 아키히토 천황의 방한에 대해 한국과 일본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56&aid=0010534234|#]] 2019년 2월 8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천황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발언을 날려, 일본 정계와 언론이 일제히 강하게 반발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5&aid=0002883527|#]] [[레이와 시대|레이와]](令和) 신연호 발표 하루 전에 2019년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8년 9월 당시 [[일본 외무성]]의 무라타 료헤이(村田良平) 사무차관이 이원종 주일대사와의 비공식 협의에서 '[[아키히토]] 황태자의 조속한 한국 방문이 실현되길 기대한다'는 일본 입장을 전달했고, 이 대사가 이를 본부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때가 알다시피 [[19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는 달이라 올림픽 개최식에 참석해서 [[한일관계]]를 발전적으로 나아가려는 고려를 엿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베 신조]]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 외무대신이 1986년 3월 당시 [[아키히토]] 황태자 부부의 방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으나 그해 8월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태자비]]의 건강 문제 등으로 방한 계획이 보류됐다.[[https://www.yna.co.kr/view/AKR20190331030300073?input=1195m|#]]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