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수이볜 (문단 편집) == 평가 == 전체적으로 보자면 천수이볜 정권은 실패한 정권이라고 봐야되겠고, 당시 민진당이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때문에 실현되지 못한 일도 적지 않았지만, 정치개혁을 추진하면서 비민주주의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조항을 폐지하고, [[국민대회]]도 사실상 폐지했으며, 입법원 선거제도도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개편했다. 더 나아가 225명이었던 의원수를 절반인 113명으로 감축했다.[* 단 의원 정수를 줄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를 항상 강화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조치는 2008년 총선에서 민진당 참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단 민진당의 득표율은 38%로 천수이볜이 낮은 지지율과 레임덕을 겪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생각보다는 잘 나왔기는 했는데, 소선거구제로 개편하면서 주요 선거구를 국민당이 싹쓸이하는 바람에 전체 의석수 가운데 개헌저지선에도 못미치는 27석에 그쳤다.] 또한 임기 2기 중에 대만화 정책을 실현하면서 여러 기관들의 이름에서 중국을 떼고 대만으로 바꾸었으며, 개혁정치의 연장선상으로 대만 본성인들 입장에서 눈엣가시였던 [[장제스]]를 기리는 [[중정기념당]]의 이름을 [[대만]] 민주 기념관으로 바꾸고 대만 민주화 운동 관련 자료를 전시하기도 했다. 다만 [[마잉주]]가 집권하고 바로 다시 [[중정기념당]]으로 바꿔버렸다. 한편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의 보장성 강화 등 사회안전망 강화에 힘을 썼으며, 성소수자 인권을 포함한 성평등 교육 과정을 신설해 훗날 대만이 아시아에서 가장 성소수자 친화적인 국가로 변모하는 데 기여한 소소한 업적도 있다. 중국 대륙에서는 천수이볜을 매우 싫어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역린]]이라 할 수 있는 대만 독립을 대놓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한간]]'(漢奸)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는데 이건 한국에서 [[이완용]]에게 붙는 [[매국노]]라는 표현과 동급이다. 그의 부패와 온갖 헛소리로 인해 [[팀킬|대만 독립파들이 큰 타격을 입었기에]] 독립파들은 그를 [[중국 국민당]]이나 [[중국|대륙]]과 거의 동급으로 취급하며 싫어한다. 재임시절 부패로 인해 국민당에게 정권을 넘겨준 일등공신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범록연맹 정치인들 중 적어도 대만 총통을 한번 이상 역임한 적이 있는 이들 중 대만 독립파들이 정신적 지주로 삼을만한 인물이 이 천수이볜 아니면 리덩후이 정도인데,[* 범록연맹 출신 총통들 중에 지지도가 제일 높은 인물은 단연 [[차이잉원]]이지만 차이잉원의 경우는 총통 본인이 대만 독립 주장에는 선을 긋고 있어서 대만 독립파가 본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사실 리덩후이도 퇴임 이후에나 범록연맹으로 갈아탄 거지 본인의 총통 재임 시절에는 엄연히 국민당 소속이었다.] 문제는 리덩후이의 경우 천수이볜과 달리 퇴임 이후에 감옥만 안 갔다 뿐이지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천수이볜보다도 더 정상적이지 못 한 인물이라 여전히 독립파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에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래서 대만 독립파들 중에서도 본인들이 추진하는 바가 아직 지지부진한 상태임을 자조하는 측에서는 "애당초 정신적 지주로 삼을만한 인간들이라는 게 리덩후이나 천수이볜 따위 뿐이니 우리가 이 모양 이 꼴 아니겠느냐?"고 자조하기도 한다(...). ~~두 사람보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홍콩의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고 [[양안전쟁|대만 침공]] 협박을 일삼아 범록 결집을 이끈 [[시진핑|어둠의 민진당 선대위원장]]이 정신적 지주에 가까울 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