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명제 (문단 편집) === 어린 시절 === 누르하치는 [[랴오닝성]] 출신으로 오도리 만호부(斡朶里 萬戶府)의 만호였던 [[아이신기오로 먼터무|먼터무]](孟特穆)[* 흔히 몽골식 이름인 '''몽케테무르''' 혹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는 한국식 독음인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로 알려져 있다. 먼터무는 원래 [[조선|조선 왕조]]의 영역인 [[함흥]] 주변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무단장]]과 [[송화강]] 유역까지 부족을 이끌고 다닌 [[여진족]]의 추장으로 결국 대륙의 동북부 지방 남부에 정착했다. 훗날 [[청나라]]에 의해 [[조조(동음이의어)|(肇祖)]] [[원제|원황제(原皇帝)]]로 추존되었다.]의 6대손이었다. 아버지 [[탁시]]와 할아버지 [[기오창가]]는 여진족이었지만 고려 출신 귀화인의 후손인 명나라 요동 총병 [[이성량]]에게 복속해 있었다. 원래 만주 지역은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잠시 [[당나라]]가 관할했으나, 698년 [[발해]]가 세워지고, 이후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가 지배하다가 북원의 장수인 [[나하추]]가 명나라에 귀순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사실 만주사를 언급할 때 이 점은 간과되고 있다. '''한족이 만주를 복속시킨 것은 명나라가 거의 최초라고 할 수 있다'''.] 한족 왕조인 명나라의 관할이 되었다. 명나라는 이렇게 민감한 지역인 만주를 다스리기 위해, 일반 행정구역처럼 6부의 [[이부]]에서 관할하는 것이 아니라 [[병부]]에서 관장하도록 했다. 왜냐하면 여진족 자체도 안보상으로 문제였거니와, 만주 서쪽에 있는 몽골도 명나라의 안보에 위험한 존재였다. 그리하여 이곳에는 대군이 주둔하며 군인이 행정과 군사를 총괄했다. 이성량은 이곳을 다스렸는데, 점점 요동을 사적으로 영지화했다.[* 이는 후한때의 [[서량]]에 주둔하면서 [[강족]] 오랑캐를 막던 [[동탁]]의 행태와 비슷한데, 이런 이민족 방어를 맡은 장수가 군벌이 되는 현상은 [[한나라]] 시기부터 중국사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었고, 중앙 권력이 약화되면 바로 독립정권이 되었다. 청나라의 성조 강희제는 이것을 경계하여 삼번을 폐지하려 했고, 결국 [[삼번의 난]]을 겪은 이후에야 폐지할 수 있었다.] 누르하치의 조상들은 수극소허부(또는 수크수허 아이먼) 소속으로 전체 부를 다스리는 족장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유력한 가문은 되었다. 그리하여 대대로 명나라에 복속해 있었다. 그리고 건주위의 여진족들은 명나라와의 교역으로 계속 문화 수준이 높아져 있었으며, 수렵-채집-유목생활을 버리고 점점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 누르하치는 탁시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기골이 장대했다. 명나라의 문화적인 영향 때문에 누르하치는 어릴 때부터 글(한문)을 배워 다른 정복왕조의 개창자처럼 문맹이 아니었고, 여진족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었던 말타기와 무예도 열심히 익혔다. 하지만 9세 때 생모가 죽고 아버지가 계모 하다나라씨를 맞자,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져 통갸씨 가문의 딸과 결혼한 후 18세에 집을 나가 처가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가축 몇 필과 노비 몇 명을 주면서 누르하치를 분가시켰다.[* 이런 분가는 유목민 특유의 [[왕위 계승의 법칙#s-3.2.1|말자 상속]]에 기반한 듯하다. 즉, 누르하치는 장자였지만, 말자 상속을 선호하는 여진족 관습상,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추장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때 누르하치는 넉넉한 상태가 아니었고, 만주의 산에서 약초와 산삼을 캐내 명나라 상인들에게 파는 [[심마니]] 노릇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는 만주뿐만 아니라 명나라 북방의 여러 곳을 떠돌면서 [[중국어]]와 [[몽골어]]를 익혔다. 하지만 이런 약초상 생활에 싫증이 난 누르하치는 요동 총병 [[이성량]]의 휘하에[* 요동의 명나라는 여진족을 모병해 [[외인부대]], 즉 고대 로마 제국의 포에데라티 비슷하게 운용했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거느린 요동병도 상당수가 이런 여진족 또는 몽골병 출신이었다.] 입대했다. 승마와 활쏘기에 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당장 이성량의 눈에 들었고, 그는 이성량 휘하에서 점점 승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