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계제 (문단 편집) == 기타 == * 중국 드라마 <강산풍우정>에서는 영화 <[[영웅(2002)|영웅]]>의 [[진시황]]과 <강희왕조>에서 [[강희제]]를 맡았던 명배우 [[진도명]]이 천계제 역으로 출연했다. 실제 천계제와 비슷하지만 역사와 달리 신장병으로 죽었으며 죽기전에 숭정제에게 위충현의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중국 드라마 <[[천하|대명천하]]>는 천계제 때 [[위충현]]과 봉성 부인, 천계제의 동생 주유검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 암투를 다루고 있다. * 천계제의 재위 기간은 조선 [[광해군]](재위 1608년 ~ 1623년)과 [[인조]](재위 1623년 ~ 1649년)의 재위 기간과 겹친다. * [[로마 제국]]의 [[콤모두스]]와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황제]]로서는 부적합하지만 이들이 했으면 매우 적합한 직업이 있었다'''는 점이다. 천계제는 황제로서는 부적합했으나, [[목수]]로 태어났으면 대성했을 인물이고 콤모두스 역시 황제로서는 부적합했지만 [[검투사]]로 태어났으면 대성했을 인물이었다. 다만 콤모두스는 재위 2년까지는 무척 멀쩡했고 평균 정도의 능력을 가진 황제인데다 망가지기 전까지는 의외로 황제가 더 적합한 직업이었다. 고대 서양 군주 중 최고의 [[명군]]으로, 깐깐하고 엄격한 면이 많던 부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2세기 당시 최고의 인재풀을 가진 [[원로원]]이 콤모두스의 자질을 높게 평가했던 부분을 생각해보면, 천계제와는 본질부터 다르다고 볼 수 있는 케이스였다. 콤모두스는 아버지 생전부터 어머니처럼 따른 큰 누나 [[루킬라]]가 재위 2년 만에, "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콤모두스 아내가 아우구스타가 되면 사라질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콜로세움]]에서 별 이유없이 암살될 뻔 했다. 다행히 암살범이 [[중2병]] 대사를 외치며 뜸을 들여 목숨은 건졌지만 그때 충격으로 병석에 누웠는데, 얼마 되지 않아 최측근이 근위대장에게 암살되고 본인까지 2번이나 별 다른 이유 없이 암살 위협을 겪은 탓에 정신분열, [[대인기피증]], [[환청]] 등에 시달리더니 완전히 망가지게 됐다. 어떻게 보면, 콤모두스를 여러 번 접견한데다 이 황제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동년배의 원로원 의원 [[디오 카시우스]]의 증언처럼 실제 콤모두스는 [[인간말종]]이자 로마사 최악의 [[암군]]이자 [[폭군]]이라는 평과 달리 천성 자체가 착하고 누나에게 암살 음모를 겪은 이후 그 후유증으로 망가진 불우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오늘날 현대 사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 [[5세기|약 1,200년 전]]에도 천계제처럼 공구를 좋아한 황제 [[후폐제(유송)]]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인간과 비교해 보면 차라리 진퉁 예술인인 천계제가 백만 배 나았다. 적어도 천계제는 나무만 썰고 깎았지만 [[토막살인|이 인간은 '''사람을 썰고 깎아내어 가구로 만들었다.''']] * 《[[명군이 되어보세!]]》에서는 아버지 주상락이 독살당하는 바람에, 황제가 되지 못 했다. 그리고 명나라는 황제가 된 [[주상순]] 때문에 실제 역사보다 더 빨리 몰락한다. 이 와중에 일가족을 이끌고 탈출해 조선에 귀순하여 정착한다. * [[미식가]]였다. 연꽃국을 좋아했고 조개구이, 새우튀김, 상어 지느러미 요리, 제비집 요리를 즐겨 먹었다. 닭고기와 돼지고기도 좋아해서 자주 먹었으며 술도 좋아해 60~70여 종을 마셨다. * 사냥과 승마, 무술도 좋아했다. * 그의 집권 기간인 1626년 5월 30일 명나라의 수도 북경 왕공창(王恭廠) 지역에서 이상한 대폭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명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 희종실록(熹宗實錄), 명나라 조정이 출간한 공식 문서인 천변저초(天變邸抄), 명나라 사람 황욱(黃煜)이 남긴 책인 벽혈록(碧血錄), [[청나라]]의 고증학자인 주이준(朱彝尊) ^^(1629년 ~ 1709년)^^이 쓴 책인 일하구문(日下舊聞) 등에 모두 언급되었는데 그 내용이 마치 [[외계인]]과 [[UFO]]가 나타난 것과도 흡사하다. [[http://todayhumor.com/?mystery_8978|#]] * 조선에서는 명나라 멸망에 대해서는 원망할 수 없는 임금이라고 평했다.[* "사리에 어두운 임금은 원망하지 않는 법이니, 천계(天啓)황제는 원망할 수 없는 임금에 해당되지만, 만력(萬曆)황제는 초년에 영매하고 호걸스럽던 임금으로 사십 년 동안이나 왕위에 있었으나 신료들을 인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경계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천계제 저거 일부러 [[암군]] 짓만 하는 것도 아니고 원래 저능아 같은 못난 놈인데 그런 놈 붙들고 욕하면 뭐하고 원망해 봐야 뭐하겠냐.'''"라는 의미다.] 다만 이 황제 제위 말년에 조선에서는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폐위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명 조정에서는 광해군 정권을 명에 협조적인 정권으로 보았고 그에 관한 잘못된 풍문이 도는 바람에 반정 세력들이 책봉받는 데 애를 먹었다. 이 결과 인조가 즉위하고 나서 22개월 동안 책봉 고명을 받지 못 했다. * 반면 [[청나라]]에서는 [[만력제]]와 동급의 [[암군]]으로 여겼는데, 이 황제 대에 명나라에 사망선고를 내리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환관 [[위충현]]이 구천구백세를 떠들며 나라를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태창제가 제위 얼마 되지도 않아 죽었고 환관의 전횡은 결국 황제가 제대로 결단하면 막을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책임질 사람이 만력제 빼면 천계제 밖에 없기도 했고.[* "지난해에 황제가 칙지를 내리기를 짐이 탕산(湯山)에 행차하여 명나라의 여러 능(陵)에 제사를 지냈는데, 여러 능들이 많이 무너진 것을 보고 개탄하였다. 명나라 중엽 이후로 국사가 폐이(廢弛)하였고, 말년에는 유구(流寇)가 소요를 일으켜도 지킬 사람이 없어서 무너지게 되었다. 지금 국가가 하나로 통일이 된 지 이미 1백여 년이 되었으니, 전 왕조의 능침(陵寢)을 수리해야 하겠다. 명나라 세종(世宗)에 대해서는 일찍이 윤전가(尹銓嘉)의 아룀으로 인하여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으나 다만 명나라가 숭정(崇禎) 때 망하지 않고 만력(萬曆)과 천계(天啓) 때에 망하였기 때문에 역대의 제왕 사당 안에는 그 위패(位牌)를 없앴지만 능침에는 그냥 제사를 지내었다. 세종이 비록 재초(齋醮)에 뜻이 빠지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만력과 천계 같은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그 능침에도 일체로 제사를 지냄으로써 공명 정대하다는 것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리하는 등의 공력(工力)에 있어서는 비록 백만의 내탕고 금을 풀게 되더라도 아끼지 않을 것이니, 이부 상서 유용(劉), 예부 상서 덕보(德保), 공부 상서 김간(金簡), 시랑 조문식(曺文植) 덕성(德成)을 파견하여 완공하게 하라. 지방관이 마음을 다하여 수호하여 땔나무를 하거나 짐승을 기르지 못하게 엄히 금하라.고 하였습니다. 고적(考績)하는 법은, 3년에 1고(考)하게 되었는데, 그 조목은 여섯이었습니다. 첫째는 신중히 하지 않은 것, 둘째는 무능한 사람은 모두 파직할 것, 셋째는 재력(材力)이 미치지 못한 것, 넷째는 경망한 사람은 모두 등급을 내릴 것, 다섯째는 병이 난 것, 여섯째는 늙은 사람을 모두 벼슬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적할 때 이름을 점검하며 예를 행하면 연로한 사람은 흔히 수염에 물들인다고 합니다."][* 근데 천계제는 재위기간도 짧았기에 만력제와 동급의 암군이라는 건 천계제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이다.] * 뜻밖에도 먼 훗날 [[한반도]]에 생긴 [[전남대학교]]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전남대에서 꽤 유명한 포토스팟인 전남대 홍매가 그 주인공. 1621년에 월봉 고부천 선생이 명나라에 특사로 방문해 천계제를 알현했는데 그때 천계제가 그에게 홍매 한그루를 하사했고 그는 이것을 자신의 고향인 창평에 심고 대명매라 이름 붙였는데 그 대명매의 후계목이 바로 전남대 홍매인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