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책벌레 (문단 편집) === 책벌레들에 대한 이야기 === 책벌레들에 관한 에피소드만 모아놓은 '젠틀 매드니스'(신사적인 광기)라는 [[책]]도 나와 있으며 책이 무려 1100쪽을 넘는 엄청난 두께다. 그리고 정가도 48,000원으로 매우 비싸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흥미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으니 이런 쪽에 관심있는 사람은 사서 보거나 근처의 지역 도서관에서 찾아볼 만한 서적이다. * [[노르웨이]]의 전설 중 하나로 책벌레를 넘어서 '''책에 미친''' 백작 이야기가 있는데 이 백작의 이름은 루블랑이며 그야말로 책에 미친 인물. 100권 가량의 책을 소유했는데[* 근대 이전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해 책이 정말 귀했기 때문에 그 당시 100권이면 현대 기준으로 수만 권을 가지고 있는 것과 동급이라 봐도 무방하다.] 책 한 권만 없어져도 자신이 직접 찾았고 밥을 굶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까지. 그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집착이 점점 심해져 '''책이 자신에게 말을 건다고 주장했고''' 나중에 자신에게 책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절망하면서 자신의 소유한 100권가량의 도서에 하나하나 제목에 사람 이름을 붙이고 도서 내용을 거의 다 암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아내도 남편과 마찬가지로 미쳐서 남편의 서고에 불을 지른 다음 같이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일본의 공포만화의 거장 중 한명인 [[이토 준지]]가 이 전설을 모티브로 단편을 그렸다. * [[조선시대]]는 '선비의 나라'였던만큼 괴수급의 책벌레들이 꽤 많았다. 애초에 조선 시대 때 공부법이 책 하나를 통째로 외운 다음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식인 것도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일단 [[세종대왕]]을 보자. 처음부터 최종보스~~ * [[조선]]의 책벌레 중 좀 특이한 유형의 책벌레를 소개하자면 조선 초기의 학자인 김수온(1410~1481). 그는 앉아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한 장 한 장 찢어서''' 휴대하고 다니며 읽다가 완전히 그 내용을 파악하면 그 찢은 장을 '''버리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만화에 이런 개그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가 네 나이땐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 읽으면 한장, 한장 찢었었더랬지."라고 하니 그 아들이 대답하길, "전 그래서 아예 한영사전을 먹었습니다."]. 그 정도면 이해한다 쳐도 자기 돈으로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남에게 빌린 책이라서......[* 지금도 책값이 비싼 편인데 저때는 책 1권값이 0.5말에서 2말 정도 하던 수준이고 지방 벽지에서 책값이 더 비쌌는데, 쌀 1말이 대략 18KG에 해당된다. 이러니 책 몇권 정도 가지고있는 정도면 몰라도 수십권씩 가지고 있는것은 어느정도 먹고사는 계층이라는 얘기이고, 책을 수백권~수천권씩 가지고 있으면 명문가나 거상급의 부자라는것을 인증하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즉, 김수온이 엄청난 민폐를 저지른 셈.] 하루는 김수온이 [[신숙주]]가 가지고 있었던 고서 한 권을 빌려달라고 간청하자 그의 버릇을 알고 있었던 신숙주는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결국 책을 빌려주는 대신 책 내용을 필사한 후 열흘 후에 돌려주는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김수온이 열흘이 지나도 책을 돌려주지 않자 신숙주가 직접 김수온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그의 방에는 '''신숙주의 책 종이들이''' 벽이나 천장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신숙주에게 '''"앉아서 읽는 것보다 이렇게 읽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이랬다"'''고 변명(?)했다고.[* 판본에 따라서는 워낙 귀한 책이라서 찢어서 버리기는 아까워 벽에 붙여서 외웠다고 변명을 하는 경우가 있다.][* 곤혹스럽게도 신숙주도 책벌레로 유명한 사람이다. 세종대왕때 얘기는 너무 유명하니 패스하고 유언으로 남긴 것도 저 세상에서 읽게 책 몇권 좀 무덤에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또다른 얘기로는 이 책이 무려 '''세조가 직접 하사한 책'''이라서 신숙주가 빌려주기 거부했고 그래도 김수온이 졸라 대자 빌려줬더니만 역시나 찢겨있었다. 다만 버리지는 않았는데 김수온은 "어찌 임금님께서 주신 책을 길바닥에 버리겠는가?" 라고 말했다고... ~~신숙주:그럼 임금님이 주신 책을 찢는건 잘 하는 짓이냐?~~] 사실 김수온이 이런 괴벽한 버릇이 있긴 했지만 신숙주는 물론이고 [[성삼문]], 서거정, 양성지 같은 학자들과도 친교가 있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당대의 명문장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 사람으로 세상을 떠날 때 유언 역시 자식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면서 그는 "너희들은 [[대학(경전)|대학]]과 [[중용]]은 많이 읽지 말거라. 정신이 혼미하지만 지금도 그 글들이 눈에 선하구나"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 백곡 [[김득신(시인)|김득신]](1604~1684)은 10세 때 겨우 한글을 뗐으며 20세 때 겨우 학문을 깨우칠 정도로 진도가 늦었으나 그 이후 자신만의 시 세계를 창조해 내며 책을 읽게 되었고 사기 열전에서 《백이/숙제 열전》부분을 '''1억 번 넘게''' 읽었다고도 한다.[* 당시 단위로 억(億)은 10만이었다고 한다.] 그는 독수기에 1만 번 이상 읽은 책을 적어놨는데, 그 수가 36편이나 된다. 그래서 그의 [[서재]] 이름을 '억만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런 노력 끝에 59세에 장원급제했으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창조해 나아갔다고 한다. 이에 유명한 일화도 있는데, 길을 가다 우연히 들은 문구가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고민을 하던 중 옆에 같이 가던 머슴이 '''어르신이 하도 많이 읽으셔서 쇤네도 기억이 나는데 왜그러십니까?'''라고 귀띔해주었더니 그 순간 "백이전"의 문구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참고로 머슴과 부인, 여자에게도 책을 읽도록 하면서 교육을 시켰고 이집 개는 풍월을 쉽게 읽는다는 말도 있었는걸로 보아 [[대인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일화로는 전염병이 창궐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을 때(시기상 [[경신대기근]]이었을 것으로 추정) 한 지인이 김득신에게 농담조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 수와 자네가 읽은 책 중 어느 쪽이 더 많은가?'''하고 물어보았다는 얘기가 있다.~~인성보소~~ * 어느 경우엔 심해서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의 어느 야사에 의하면 역사책을 좋아하는 남자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해 큰 소동을 많이 벌였는데, 하루는 악비가 [[진회]]의 모함을 받아 사형당하는 장면을 보자 그 남자가 화가 나서 집안 살림을 부수고 '누가 악비를 죽였냐고' 분노했다. 그러자 아내가 진정하라고 하자 그 남자는 '너도 진회와 한 패지'라고 하면서 아내를 혼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이런 얘기는 [[조선]]에도 있다. 정조가 이덕무에게 [[소설|패관잡기]]의 유해함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인지 실화인지 한 얘기에서 절초전(담배를 썰어서 파는 곳)에서 전기수(책 이야기를 얘기하는 사람)가 임경업전을 읊었는데 이때 역적 김자점에 의해 임경업이 억울하게 죽는 대목에 이르자 한 사람이 '''담배 써는 칼로 전기수를 난자해 죽여버렸다고 한다...''' 책벌레 아니라도 이야기에 너무 심취했다가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는 꼭 생긴다. 그 외에도 중국에서는 연극에서 조조 역을 맡은 사람이 '''너무 연기를 잘 한 나머지 연극 도중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