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원시 (문단 편집) === 뚜렷한 지역성 ===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했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시/통합 이전|창원]], [[진해시|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상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됐으며,[*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됐다. 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마산+창원+함안이었고 창원시가 밀었던 모델이 마산+창원+진해였다. 당시 마산시의 생각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 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 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 동력을 얻을 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 등 미개발 지역이 남아 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다른 이점을 찾을 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 통합을 추진했다.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남'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됐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결정이 나지 못하고 기존 창원시청이 여전히 시청으로 기능하는 중이다. 한때는 구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 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 상태로 되돌아가자"'''라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355831|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같은 날 통합 창원시의 시청사 입지를 조속히 선정하자는 결의안도 통과됐다. 물론 창원시는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 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당장 자진통합으로 중앙정부에서 받아먹은 추가 재정지원이 교부세만 연간 10% 수준인데 재분리한다고 하면 중앙정부가 가만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교부세 추가분을 반환한다고 하면 분담률을 두고 내분이 일어날 것이다. 어이없는 사실은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세 도시로 분리된, 원 상태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이런 모순된 결의안들이 통과된 이유는 구 마산, 구진해 측과 구 창원 측에서 서로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통합시청사 소재지를 결정하기 위한 힘겨루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19대 총선]] 때는 시청사 소재지를 두고 후보들 간에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다. 옛 창원 지역에서는 현 청사 리모델링을, 옛 마산 지역에서는 마산으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옛 진해 지역의 야권, 무소속 후보들은 진해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진해구에서 막판에 간신히 [[김병로(1943)|야권 단일화]]를 이루었음에도 꽤 큰 차이로 [[김성찬(군인)|여당 후보]]에게 패한 것을 볼 때, 다시 나누어지는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통합의 후유증이 상당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창원시의회에서 구 마산시 분리 건의안과 현 임시청사의 시청사 확정안이 동시에 통과됐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25945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43&aid=0002112504|#]]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주영(정치인)|이주영]]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상 무산되었다.[[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547176&ctg=1213|#]][* 재분리의 필요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기존 지자체의 통합을 유도하는 방침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기도 하니 성사될 리가 만무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통합을 한다고 지역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서울이나 부산, 대구, 인천처럼 주변 지역을 흡수하며 성장한 대도시들이 도시 안에서 옛 지역명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부산의 [[서면]]은 본래 동래군 서면, 대구의 [[칠곡]]은 본래 칠곡군에 속했던 지역. 그 외 구명은 대체로 과거의 지역명을 따른다. 다만, 고만고만한 동네를 서서히 흡수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지역을 단번에 통합한지라 이렇게 갈등이 심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삼여 통합]]으로 탄생한 [[여수시]], [[사천군]]과 [[삼천포시]]를 통합한 [[사천시]]가 있다. 문제는 마산 지역 중장년층이 마산이라는 지명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이 타 지역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데 있다. 발단은 원 창원 지역이 1973~1980년 사이에 '''마산시에 편입되어 있었던''' 데 있다. 즉 이 시기를 겪어봤던 마산 중장년층의 입장에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새로 생긴 촌동네가 박혀 있던 마산 지명을 밀어냈다]]''''고 인식[* [[고양시]]-[[일산신도시]]의 사례와 비슷한데 고양군 일산읍 시절이나, [[일산신도시]] 초창기에 입주한 주민들은 [[고양시]] 전체를 '''일산'''이라고 부르는 사례가 허다하다. 마산이 창원보다 먼저 개발된 것 처럼, [[고양시]] 일대도 [[일산신도시]]가 먼저 개발되고 [[덕양구]] [[화정동]]이 그 다음에 개발되었다. 최초에는 원릉(원당+능곡)과 더불어 '''일산시'''로의 분리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었을 정도이니.]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역 통합에서 이리저리 치고받고 볶은 지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쪽의 명칭이 역사성이나 인지도에서 압도적이었던 데 반해[* 이미 도농 통합 직전에 군명을 시 지명과 맞춰 환원한 지역은 별 문제가 없었고, 군산-옥구, 포항-영일, 순천-승주, [[울산]]-[[울산군|울주]]는 시 지명이 군 지명의 인지도를 압도했기 때문에, [[익산군|익산]]-[[이리시|이리]], 평택-[[송탄시|송탄]], [[남양주군|남양주]]-[[미금시|미금]], [[여수시(통합 이전)|여수]]-[[여천군|여천]], [[청주시(통합 이전)|청주]]-[[청원군|청원]], [[광양군|광양]]-[[동광양시|동광양]], [[정읍군|정읍]]-[[정주시(전라북도)|정주]], [[경주시|경주]]-[[경주군|월성]], [[사천군|사천]]-[[삼천포시|삼천포]], [[거제군|거제]]-[[장승포시|장승포]], [[통영군|통영]]-[[충무시|충무]]는 전자의 역사성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지명에 합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경군]]-[[점촌시]], [[아산군]]-[[온양시]], [[구미시]]-[[선산군]]의 경우처럼 통합시 명칭을 놓고 갈등이 있었던 사례도 없었던 건 아니고, 일산시·원당시·고양시 분할승격 대신 [[고양시]]로 통합된 고양군의 사례처럼 승격 이후에도 고양vs일산 대표지명 문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마산시|마산]]은 창원에 비해 인지도 면에서도, 역사성 면에서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선 적도 있다 보니 계속해서 마산 지명 사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산은 창원에 맞서 자신들이 통합의 주체이자 중심이 되려고 시도하기도 했고 그랬으면 통합마산시가 출범할 수 있었으리라고 믿고 있지만 그러나 같은 마산에서도 청년층은 이미 유소년기부터 지역의 몰락을 봤다. 2019년 현재 만 30세인 1989년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산의 구 폐지를 겪었다. 즉 이들이 눈 뜨고 말 익힌 후로 알고 있는 마산의 모습은 1990년대에 이미 15만의 인구가 빠져나가고 [[한일합섬]]이 이전해 몰락해 버린 인구 30만 수준의 지방 [[중소도시]]일 뿐이다. 이들은 마창진 지역에서 창원시의 종주권을 받아들이며 살아오다보니 중장년층의 마산 바라기에 쉽게 동조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창원 새 야구장 명칭 선정 논란|이런 사례]]처럼 지역 중장년층들의 마산 타령이 동네 망신만 시킨다면서 비판적인 입장이다[* [[분당신도시]]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무조건적인 독립시 타령이 지역 망신이라며 자성론이 있다.]. 아무튼 2010년 통합한 이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으나 기존 3개 시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뚜렷한 지역성을 보유하고 있다. 옛 마산시와 진해시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도시권이 형성되어 온 곳인지라 동 지역 급의 좁은 범위(예: 북마산, 신마산 등)에도 별칭이 붙어 있을 정도이고, 뒤늦게 도시로 출범한 옛 창원시는 창원공단의 조성으로 대규모 이주해온 외지인들로 구성된 [[계획도시]]인 데다가 진해는 특히 [[군사도시]]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창원-진해 사이는 장복산으로, 창원-마산 사이는 팔룡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3개 시의 지역성이 모두 제각기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특히 [[일산신도시]]나 [[분당신도시]]의 사례처럼[* [[성남시]]/[[고양시]]에 산다고 하지 않고, [[분당구]]/[[일산동구]]·[[일산서구|서구]]에 산다고 한다.] 지역간 자부심 문제로,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의 주민들은 마창진 통합 이후에도 본인을 주로 '''"창원 사람"'''보다는 '''"마산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창원에 산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타 지역 사람이 물을 경우 창원에 산다고 대답을 하는 "마산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반대로 창원보다는 마산의 인지도가 높은 점을 토대로, '''"마산에 산다"'''고 하는 "창원 사람"들도 간혹 있다.]. '''반면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 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창원시내버스협의회|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상남동(성산구)|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 현 창원시 의창구]와 회원현[* 현 창원시 마산회원구]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현재 창원시의 경제적 규모는 광역시 급이며, 통합시 출범을 토대로 2010년 중후반 광역시 승격을 노렸었다. 사실 창원의 광역시 승격 떡밥은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있었으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3650365?sid=100|기사]]에 따르면 재정재립도나 인구수를 기준으로 할 때 울산과 창원이 우선적인 직할시 승격대상으로 거론된 것으로 나온다. 다만 정부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하면 전주를 우선적으로 승격시키고 나머지는 추가적으로 검토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실현되지 못했고 안상수 시장 시절에 적극적으로 [[창원광역시]] 승격을 추진했으나 경상남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참고로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 시 규모가 큰 쪽이 작은 쪽을 흡수하는 형태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법률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법률상으로는 기존 지자체를 모두 폐지한 후 그 자리에 새로운 지자체를 설치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 창원시도 마찬가지지만 창원 이전의 통합시인 [[여수시]], [[제주시]], [[서귀포시]]는 물론 이후의 통합시인 [[청주시]] 역시 각각 [[여수시(통합 이전)|구 여수시]], 구 제주시, 구 서귀포시, [[청주시(통합 이전)|구 청주시]]의 명칭만 잇고 있을 뿐 이들도 [[여천시]]와 [[여천군]], [[북제주군]], [[남제주군]], [[청원군]]과 마찬가지로 통폐합되어 사라진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지자체의 홈페이지에서는 기존 시군의 시장 및 군수, 통합시의 시장을 분리해서 설명하며 통합시장은 초대부터 시작하고 있다. 창원도 현재의 창원시와 통합 전 마산, 창원, 진해시를 분리해서 설명하며 시장도 통합 창원시 시장을 다시 초대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창원시의 난리버거지를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상황에서, 2000년대에 한 때 유력하게 제시되었던 도 폐지와 기초자치단체 광역화 논의는 그야말로 '''쏙 들어가버렸다'''. 나름대로 지역간 교류가 활발해 통합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던 창원이 이 지경이니, 아예 남남인 지자체를 묶어버리자는 도 폐지론은 지자체고 중앙정부고 민간학계고 간에 손을 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늘어난 인구를 근거로 광역시 승격까지 해달라고 난리를 치니 중앙정부로서는 이렇게 난감한 일도 없는 상황이다. 관습적 지명으로서 '창원'이라고만 하면 [[창원시/통합 이전|통합 이전의 창원시 영역]]만을 마산·진해와 구분해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통합 창원시 전체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하니 문맥에 따라 잘 구분해야 한다[* 비슷한 경우로 '성남'의 경우 [[성남 본시가지]]만을 일컬을 때도 있고,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