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더시 (문단 편집) == 개요 == [[중국]] 중남부 [[후난성]]의 [[지급시]]. 창사에서 서북쪽으로 190km 떨어진, [[장강]]의 지류인 위안장(沅江)이 [[둥팅호]]로 흘러들어가는 곳에 위치한, 인구 580만명의 도시이다. 수운 교통을 통해 우한, 창사, 웨양 등과의 교류가 잦으며, 면직 및 기계 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한나라]] ~ [[수나라]] 대까지는 무릉(武陵)이라 불렸다.[* 원래 형주자사의 근무처는 양양이 아닌 무릉이었으나 후한 말 유표가 본거지로 삼게되며 사실상 형주의 중심 역할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형남 지역과 남군을 지배한 유비가 공안을 본거지로 삼았으나, 형주 공방전-이릉대전 이후로는 무릉만 등의 이민족과의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며 오나라는 형주의 역량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 도시에는 예나 지금이나 [[소수민족]]이 다수 거주하며,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춘추전국) 때의 비석과 [[당나라]] 때의 사원이 남아있다. 창더는 둥팅호(洞庭湖) 서안(西岸), 위안장(沅江)을 끼고 있는 후난성 북부의 대도시이다. [[춘추전국시대]] 때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의 검중(黔中) 지역으로서 전략적, 경제적 요충지로 각광받았고 [[진나라]] 시기에 임원현(臨沅縣)이 설치되었고 [[후한]] 시기 때 무릉군(武陵郡)으로 승격했다. 이후 [[당나라]] 때 낭주(朗州), [[송나라]] 때 정주(鼎州)로 불렸고 남송 이후 창더라고 불렸다. 창더는 위안장 유역의 물자 집산중심지이며 교통중심지다. 지청-류저우 철도, 스자좡-창사 철도가 근처에 있고 동유(桐油)를 비롯하여 쌀·목화·차·모피·채종유(菜種油) 등의 집산지이며 양조, 면막직 등 공업이 활발하며 이들 물자는 중형 선박에 실려 웨양, 창사, 우한 등지로 운송된다. 그밖에도 기계, 식품, 조선, 화학, 방직 등의 공업이 발달했고 어업도 발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