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참파 (문단 편집) ==== 몰락한 이유 ==== 사실 참파가 베트남에 인구는 밀릴 지 몰라도 풍부한 쌀 생산량과 비옥한 중부지대를 점유하고 있었고 무역으로 인한 재화도 풍부했기에 베트남과 전쟁하는 데 있어서 동등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수 천년 동안 중국 왕조들을 상대로 전쟁을 해오던 터라 군인들의 전투 경험이 풍부했다. 또한 베트남은 중국의 [[유교|유학]][* 유교는 충효를 강조하기 때문에 유교가 사회를 지배하면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충성심이 강해진다.]과 중앙집권체제[* 즉, [[군현제]]를 받아들였기에 국토 전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했다. 그러므로 국가의 모든 힘을 제대로 동원할 수 있었다.]를 도입하면서 참파보다 빠르게 국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고,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대규모 군대를 소집하여 참파의 공격에 대응하고 오히려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반면 참파는 16세기 중엽까지 다른 [[동남아]] 각국이나 [[말레이 반도]]의 [[이슬람]] 국가들처럼 도시국가들의 연맹체제를 유지하였던지라 도시국가들 중에 가장 영향력이 큰 도시의 왕이 참파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지금의 [[다낭]]과 꽝응아이 지역에 속하는 인드라푸라와 비자야의 왕들이 돌아가면서 참파의 대표 왕 노릇을 했다.] 이러한 연맹체제의 특성상 군사소집 속도가 중앙집권화된 나라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다. 각 도시들에서 군사들을 징발해야 했고 또 소집에 응하지 않는 도시들도 있었으니 전쟁수행이 여러모로 불편했다. 결국 참파는 베트남의 대규모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사로 치면 중앙집권에 도달하지 못한 [[가야]]가 중앙집권에 성공한 [[신라]]에 밀려 결국 멸망하고 흡수당한 과정과 비슷하다. 만약 참파가 어느 영웅에 의해 통일되어 베트남과 같은 철저한 중앙집권국가가 되거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일본]]의 [[에도 막부]] 내지는 [[독일 제국]]의 [[프로이센 왕국]][* 에도 막부는 명목상 [[다이묘]]들의 자치권을 인정했으며, 독일 제국은 명목상 독일 제국의 일부이면서도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지는 않은 나라들([[바이에른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등)이 존재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참파 수준의 매우 느슨한 연맹체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한 편이었다.]과 비슷한 수준의 강력한 중앙 정권이 탄생했다면 베트남과의 싸움에서 그렇게까지 허무하게 패망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또한 상상의 영역일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